상담대학원 후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3학 차에 들어서서대상관계이론을 배우고 느끼고 깨달은것들을 쓰고 있어요.
코헛은 자기애적 성격장애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발달되었어요. 다른 대상관계연구의 이론가들처럼, 인간심리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아동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야 함을 강조했어요. 요즘 한 두 자녀만 키우면서 자녀 교육에 열정적인 우리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Kohut의 자기(self)의 개념
코헛의 자기의 개념은 ‘사람의 심리적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자기이다. 이 자기는 본질상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에 의해 심리적으로 표현된 현상을 우리가 내성적으로, 즉 공감적으로 관찰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코헛이 말하는 자기는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공간상으로 응집되어 있고, 시간상으로 영속하며, 주도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지각적으로 인상(impression)을 수용하는 하나의 단위체로 보면서 깨달음과 경험상의 관점에서 자기를 보다 넓게 정의하였다.
코헛의 이론에 따르면 미발달 된 초보적인 자기가 환경 안에 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발생하여 어떻게 응집적 자기가 되어가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초보적인 자기는 이상화된 부모 형상으로서의 대상과 과대적 자기라는 하나의 주체, 이 양자를 가지고 있다. 점차적으로 과대한 자기가 길들여지고 온전히 응집된 인격으로 통합된다. 또한 성숙하는 아이의 자기는 이상화된 대상을 분리된 대상으로 깨닫기 시작하며 이상화된 부모형상을 초자아로 내사하게 된다고 하였다.
결국, 코헛에게 있어서 자기는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자극을 주고받는 주체로서 하나의 응집된 단위이며, 객체로서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 자기 대상과의 관계의 틀 안에서 존재한다. 즉, 자기는 한 개인 안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대상(selfobject)과의 관계적 모체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 대상은 어린 자기가 스스로 수행할 수 없는 필수적인(심리적으로 삶을 지탱해 주는) 기능을 수행해 주는 대상을 지칭하는데 유아에게 최초의 자기 대상은 모성적 돌봄을 제공해 주는 어머니라 할 수 있다.
Kernberg의 자기-대상과 Kohut의 자기대상의 다른 점?
코헛은 아이의 삶에서 부모,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중요한 대상을 자기대상이라고 한다. 코헛이 이 용어를 아이의 삶에서 특정한, 그리고 객관적으로 분리된 사람을 언급하는 데 사용하며 궁극적으로는 자기로 합병된다. 컨버그의 ‘자기-대상’에서 하이픈은 내적 양극 표상을 의미한다. 코헛은 자기대상을 자기가 “자기의 일부로 경험하는 대상”이라고 정의한다. 자기대상은 자기 일부처럼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으로 경험되는 대상이며 경험을 제공함으로 자기 조직을 유지시켜 준다. 1977년 코헛은 이 용어에서 하이픈(-)을 떼어 ‘자기대상’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기능을 제공하는 대상이 자기와 분리된 존재로서 경험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자기대상은 자기에게 공감적으로 반응해 줌으로 스스로 조직할 수 없는 자기의 경험과 스스로 수행할 수 없는 심리적 기능을 대신 수행하여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자기대상의 역할로부터 자기는 자기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심리적 자양분을 얻게 되고 자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대상은 이런 의미에서 자기대상으로 역할을 하게 되는 심리적 기능을 가리킨다. 코헛의 자기대상은 상상적 표상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다. 자기대상의 중요한 점은 미성숙한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자기대상들의 심리적 ‘기능들’에 있다. 유아가 어머니를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파악하기보다는 불편감이나 필요성을 만족시켜 주는 기능으로 느낀다는 것은 대상을 그 자체의 자율성을 지닌 존재로 지각하기보다는 자기의 욕구와 관련된 존재로 주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숙한 유아의 자기에게 응집성, 항구성, 탄력성을 느끼게 해주는 타인의 참여가 필요로 한다. 이는 유아가 나중에 성숙했을 때 자신의 정신구조가 스스로 담당해야 하는 기능을 지금 대신 제공해 주는 대상을 자기대상이라고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의 자기대상은 아직 아직 자기로부터 분화되지 않은 대상인데, 자기대상은 아이의 욕구에 공감적으로 반응해 주면서 자기가 점진적으로 발달하는데 필요한 경험을 제공해 주게 된다. 존중해 주고 담아 주는 양육자 없이 유아가 지속적이고 응집력 있게 자기됨을 경험할 수는 없다.
Kohut의 변형적 내면화(transmuting internalization)란
① 개념
변형적 내면화의 핵심은 최적의 좌절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코헛은 최적의 좌절이 점진적인 중성화(Progressive neutralization)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최적의 좌절이란 부모의 태도가 비록 좌절을 주었지만,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최적의 좌절 상황에서, 유아는 자신을 진정시키고 안정을 주는 부모와 그 태도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점진적인 중립화를 진행해 간다. 그 결과, 욕동을 억제할 수 있는 심리구조, 즉 중립화된 기억들과 중립화된 내적 힘들로 구성된 중립화된 심리 영역이 형성된다. 다시 말해, 변형적 내면화는 최적의 좌절로 인하여 점진적 중성화를 가져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유아는 욕동을 억제할 수 있는 심리구조가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유아는 자기 대상의 시기적절한 공감적 반응의 실패를 통해서 자기 대상에게 점진적으로 실망을 경험하게 되고, 자기 대상의 기능들은 변형적 내면화를 통해서 유아에게 점차적으로 현실적이 된다. 따라서 최적의 좌절은 점진적으로 시기적절하게 변형적 내면화를 일어나게 하여 부모가 없어도 이제는 부모가 해주던 자기 대상의 기능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아는 자기 대상을 통한 최적의 좌절로 인하여 부모의 한계를 체험하면서 환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즉, 부모에게 기대했던 역할들을 유아가 스스로 기능하면서 점차적으로 홀로서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② 과정
코헛에 의하면, 건강한 자기를 형성하는 좋은 자기/자기대상 과정은 두 단계로, 우선 자기와 자기대상 사이에 기본적인 조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고 두 번째로 상처가 되지 않는 수준의 자기대상의 실패(즉, 잘못된 공감에 바탕을 둔 반응)가 일어나야만 한다. 아이의 자기대상 쪽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실패를 ‘최적의 좌절’이라고 말한다. 초기 생애에 수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두 단계적 심리적 사건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우선 1) 변형 내재화라는 과정을 통해 심리구조의 형성을 가져오고 2) 그것은 자기/자기대상 관계가 변화되는 토양을 제공한다. 이는 자기애적 영역에서 고태적 양식으로 접촉하던(특히 거울 자기대상과 융합, 이상화 자기대상과 융합, 그리고 쌍둥이 융합에 의존하던) 자기가, 성인의 삶에서 만나는 자기대상의 공감적 반항에 의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거울전이, 이상화 전이>에 대해서
자기 대상 전이의 내용은 공감받지 못한 자기애적 욕구다.
▶ 거울전이
과대적-과시적 자기가 아동기의 발달을 걸쳐 적절히 통합되지 못한다면, 이 요소는 현실 자아로부터 떨어져 나가거나 혹은 억압되어 현실 자아로부터 분열될 것이다. 그때 과대적-과시적 자기는 더 이상 외부 현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으며, 원초적 형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분석 과정에서 그것은 분명한 형태의 거울 자기 대상전이로 활성화되기 때문에 현실 자아의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아동기에 심각하게 방해를 받은 조절 과정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울 자기 대상전이는 과대적-과시적 자기가 통합되지 못했을 때 활성화된다. 즉, 유아가 부모로부터 공감과 용납을 받지 못할 때 거울 자기 대상전이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코헛은 과대적-과시적 자기가 발달의 어느 시점에서 상처를 받았는가에 따라 세 가지 거울 전이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1) 과대 자기의 확장을 통한 융합형태의 거울 전이, 2) 쌍둥이 거울 전이, 3) 협의의 거울 전이가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로, 과대 자기의 확장을 통한 융합 형태의 거울 전이를 살펴보면, 아이가 성장과정 초기에 상처를 받은 경우 나타나는 가장 원초적인 거울 전이다. 과거 자기와 치료자가 거의 분리되지 못하는 상태로, 과대 자기의 연장 속에서 치료자가 포함된 상태라고 본다. 즉, 환자는 분석가를 과대 자기의 확장으로 경험하고, 분석가에게 과대적 및 과시적 요소를 반영해 주는 매개체로만 경험하는데 이는 대상을 일차적 동일시의 상태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초기 유아가 엄마를 전능감으로 조절하려고 하듯이 환자는 치료자를 자기의 일부로 경험하며 통제하려고 든다. 이런 원초적인 거울전이가 억압될 대 강한 저항이 나타난다.
두 번째로, 쌍둥이 거울 전이인데, 이는 과대 자기의 확장을 통한 융합 시기보다 발달된 시점에서 상처를 받은 경우 나타나는 것으로 보다 성숙한 형태의 거울 전이다. 과대 자기는 대상을 어느 정도 분리된 상태로 경험하는데, 융합의 거울 전이에서는 대상을 일차적으로 동일시한다면, 쌍둥이 전이에서는 대상과 비슷하거나 유사하다고 느낀다.
세 번째로, 협의의 거울 전이다. 이는 가장 성숙한 형태의 거울 전이다. 상처를 받는 시기도 발달단계의 후기에 나타나고 치료자도 분리된 존재로 경험된다. 치료자는 과대 자기가 재활성화하려는 욕구와 연관되는 범위 내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이 거울 전이의 핵심은 치료자가 그야말로 환자가 요청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거울처럼 반향 해주고 확인해 주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반향은 환자의 과대 자기를 다시 한번 좌절시키게 된다.
▶ 이상화 전이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모든 행복과 힘을 가진 이상화된 대상이 되고 아이는 그런 부모와 연합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반대로 모든 행복과 힘을 가진 부모와 분리될 때 아이는 공허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지만, 부모가 적절히 반응만 해준다면 아이는 점진적인 실망을 겪게 되면서 이상화 대상을 점차 현실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변형적 내면화 과정에 의하여, 자기 대상이 해주던 기능을 이제는 스스로 처리할 심리구조가 자기 안에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변형적 내면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계속 자기 대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로 남게 된다. 즉 심리 내면에 확고한 심리내적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는 아이는 결핍된 심리 구조를 보완하는 대상 의존관계를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코헛은 이상화 전이를 발달적으로 원초적 이상화 전이와 성숙한 이상화 전이로 분류하였다. 원초적 이상화 전이는 이상화된 어머니 이마고가 자신의 대상과 거의 완전히 융합되었던 것처럼 분석가와의 관계에서도 그런 원초적 상태가 다시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반면 성숙한 이상화 전이는 자기와 대상의 구분이 명확히 형성된 이후의 좌절에 기인하는 전이이다. 그러므로 명확한 이상화 대상과 그를 이상화하는 리비드가 활성화된다. 오이디푸스기부터 초기 잠복기 사이에 발생한 외상에 의한 고착이 새로운 자기 대상인 분석가와의 관계에서 활성화되는 것이다. 다만, 이상화 전이를 일어나게 하는 좌절의 시기를 정확히 아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코헛은 발생학적으로 유사 경험들이 덧붙여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상화 전이의 치료과정은 1) 이상화 전이 형성 전과 초기 단계, 2) 이상화 전이의 형성과 훈습 단계, 3) 자기대상 전이가 효율적으로 훈습된 결과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상화 전이 형성 전과 초기 단계를 살펴보면, 환자는 이상화 대상과 융합하고자 하는 강렬한 기대를 하게 된다. 환자는 이상화 전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초기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 시기에 분석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저항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확하게 그런 면들을 이해하고 환자 또한 저항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이상화 전이의 형성과 훈습 단계이다. 이상화 전이가 형성되고 분석가가 적절하게 반응해 주면, 환자는 자기애적 균형을 느끼며 자신이 온전하고, 안전하게, 좋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환자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최적의 좌절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 결과 초기 이상화 자기 대상에 대한 자기애적 부착을 철수하여 내재화하지 못했다. 즉, 전에 이상화 자기 대상이 충족시켜 주던 기능을 대신하는 항구적인 내적 심리구조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다. 한편으로 환자는 이상화 전이를 통해 치료자와 고태적인 관계, 즉, 환자의 자기가 전능한 분석가에게 융합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때 분석가는 이상화 자기 대상을 상실한 것에 대해 올바르게 해석해 줌으로써 환자가 다시 자기애적 평정을 유지하고 이상화 과정을 다시 수행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대상 전이가 효율적으로 훈습된 결과의 단계이다. 이러한 결과로 자아의 승화 능력이 증가하고 자기의 통제력이 향상된 모습들을 보인다. 환자는 분석을 통하여 인격의 자기애적 영역에 있던 에너지를 흡수하여, 보다 성숙한 대상관계에 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화 자기대상을 포기하고 그것에 투입돼 있던 에너지를 내재화하여 자기대상이 하던 기능을 대신하는 자신만의 심리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치료과정을 요약하면, 첫 번째로 이상화 전이 형성전과 초기 단계에는 환자가 이상화 대상과 융합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일어나게 된다. 이때 관계를 형성할 때 불안과 저항이 발생한다. 분석가는 환자에게 안정을 시켜주면서 저항 발생을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이상화 전이의 형성과 훈습 단계이다. 이 과정에서 이상화 전이가 형성되면 분석가는 환자에게 적절하게 반응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분석가는 환자가 이상화 대상을 상실한 것에 대해 해석해 줌으로써 환자가 자기애적 평정을 유지하고 이상화 과정을 다시 수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대상 전이가 효율적으로 훈습된 결과의 단계로, 환자가 이상화 자기 대상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심리구조를 형성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환자 자신의 자아 승화 능력이 상승하고 자기의 통제력을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코헛의 이론으로 나를 이해하기
부끄럽지만 지난여름방학 동안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그날은 일요일지만 아이가 학원을 두 군데나 가야 하는데 하필 모의고사도 치르는 날이라 점심시간이 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포함하여 겨우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런 날은 보통 김밥이나 초밥 등 간단하게 차 안에서 먹을 수 있게 도시락을 싸곤 하는데 이번엔 유부초밥과 과일 도시락을 준비했다. 내가 엄마여서 그런지 아니면 어린 시절 식당 일로 바쁜 엄마에게 늘 아침 밥상이 그리웠던 것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유독 아이 밥상에 집착을 하는 편이다. 꼭 밥이 아니어도 되지만 아침은 꼭 챙겨줘야 직성이 풀리고 먹지 못한다면 도시락이라도 챙겨줘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실제 먹었는지보다는 내가 아이에게 얼마나 해주었는가가 늘 숙제처럼 다가오곤 했다.
이날도 아이의 점심으로 유부 초밥 도시락으로 준비하고 이동하는 중간에 먹이고 아이를 학원에 내려주고는 남편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아이가 남긴 초밥이 2개가 있었다. 그제야 나는 허기가 돌아 남은 것을 먹으려다 남편에게도 하나 먹을 거냐고 권했다. 남편은 한 달 가까이 다이어트 중이었다. 그동안의 남편의 다이어트라 함은 365일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며칠 하다가 그만두기를 일쑤, 말로만 다이어트를 하고(적어도 내 눈에는), 대충 먹고 싶은 것은 조금씩은 먹고 마는, 먹고 나서는 늘 '나 살 빼야 하는데~'로 마무리되는 그런 무른 다이어트였다. 내가 다 먹기 전에 그저 옆사람에 먹을 것을 권하려고 예의상 물어본 것뿐이었는데, 돌아오는 말이, '에이 씨~.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였다. 그것이 혼잣말인지. 나 들으라는 말인지 혹은 무심결에 나온 말인데 내가 들은 것인지를 생각하다 그만 나는 화가 났다.
내가 상대방이 나빠지라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 이런 식으로 취급받아도 되나 하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나는 어쩌면 아이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먹이는 것을 너무도 중요한 내 임무라고 생각했나, 그렇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소중한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내 마음이 대접받아도 되나 싶어서 서글퍼졌다. 대화를 통해 들어보니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했는데도 그동안 내가 자꾸 음식을 권해서 여러 번 짜증이 났고 그 마음이 툭 하고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데도 나는 그의 표현 방식이 도저히 적응이 안 되었다. 타인이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내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난 그의 표현 자체가 상처로 다가왔다. 그 말투와 억양이 경멸이나 비난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아무렴 남편이 나빠지라고 내가 한 음식을 권했겠나 싶어서 서운하기만 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눈물이 났다. 별거 아닌 일로 이렇게 하루 종일 울 수 있는가에 대해 나 자신도 놀랐던 것 같다.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이 '아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을 때 남편이 굉장히 멀게 느껴졌었는데, 남편은 그저 화난 마음이 툭 하고 나온 것뿐이라는 데 나는 나를, 나의 전부를 거절한 것처럼 심정이 무너졌다. 그는 단지 초밥을 거절했을 뿐인데도 나의 전부를 거절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나와 대화에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별개의 문제인데 왜 확대해석하느냐고 그러는데도 쉽사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가만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는 늘 내 편이었고 내게는 늘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그런 그에게 난 많이 의존적인 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잘하건 못하건 늘 나를 받아주던 사람인데 그 표현 하나 만으로 분리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단지 초밥을 거절했을 뿐인데 나를 거절한 것처럼, 상대방은 내게 너무도 중요한데 나는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하루 종일 눈물이 났던 거였다. 이런 것을 보고 삼켜짐의 두려움이라고 했던가. 늘 옆에 있어서 평소엔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별거 아닌 말에 상대방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 나머지 온통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그런 두려움 말이다.
코헛의 이론으로 보자면, 남편은 나의 자기애적 욕구에 적절하게 반응해 주던 자기대상이었다. 연애를 오래 했고 결혼하기 전부터 주욱 그래왔다. 부모에게 충분히 받을 수 없었던 나의 과대 자기를 거울 반응 해주는 자기대상이었으며, 가끔은 위대하고도 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진정시켜 주는 대상과 융합하고자 하는 욕구를 수용해 주는 이상화 자기대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참 예민하던 시절에 엄마의 아침 밥상이 그리웠던 나는 보상심리로 아이의 아침밥과 간식에 집착하는 편인데 결국 엄마와의 자기대상 반응의 좌절을 극복하려고 남편과 아이를 위해 밥을 하고 그 역할과 가족들의 반응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남편과 자녀의 거울 반응은 늘 긍정적이었으므로) 가족들의 거절이 단지 음식에 대한 거절을 넘어 나의 존재감에 대한 무시로, 그것은 다시 절망감과 실망감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남편과의 다툼으로 자기 해체의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남편은 사과를 했고 뭐든 네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지 말라고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 마음은 당신과 다르다고, 내면의 깊은 소외감 같은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면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화를 풀고 싶지 않은 마음도 결국 떼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다 받아달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 일찍 부모화된 나에게 대학시절부터 나의 자기대상이었던 남편에게 아이처럼 다 이해하라고 떼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코헛이 말하는 불안 중에 자기 자체의 상태에 대해 느끼는 불안, 즉 자기가 해체되기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자기 해체의 불안은 자기 파편화의 위협이나 주도성을 심각하게 상실할 위험에 처한 경우, 자존감의 극심한 손상, 극도의 무의미감 등이 광범위한 자기 해체의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들이다. 별거 아닐 수도 있었던 이번 초밥 사건이 내겐 자기 해체의 불안을 느낄 만한 일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내가 가족에게 느끼는 몰랐던 심리적 역동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또한 깨닫게 된 것도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초밥을 거절한 것이 그저 초밥일 뿐이라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는 날엔 내가 더 성장해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모른다면 모를까 알게 된다면 조금씩 변화될 거라 생각해 본다. ’ 어떻게 ‘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참고문헌
1. 대상관계 이론 입문, Lavinia Gomez 저, 김창대 외 역, 학지사 2. 쉽게 자기심리학 , 최영민 저, 학지사
3. 대상관계이론과 자기심리학, Michael St. clair 저, 안석모 역. 센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