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태그(Tag)를 책갈피로 쓰는 내 버릇 때문인지 오래전 읽던 책을 꺼내 드는데 태그 하나가 툭 떨어졌다.
- 이 소재는 특성상 "미어짐"이 우려되니 착용 시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참이나 그 문장을 들여다봤다. 미어짐이라니. 마음이 미어질 때 쓰는 그 미어짐? 옷이 미어진다고? 옷도 슬퍼져서 마음이 미어지나? 당연히 아니다. 미어짐을 사전으로 찾아보면,
미어짐
- 팽팽한 가죽이나 종이 따위가 해어져서 구멍이 나다.
- 가득 차서 터질 듯하다
-(비유적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이 심한 고통이나 슬픔을 느끼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의 미어짐이라는 것은 일정한 하중을 가했을 때 생기는 벌어짐. 천을 구성하는 실이 하중에 의하여 미끄러지며 발생한다고 되어 있다. 사물이든 우리의 살(피부)이든, 사람의 감정이든 뭐든 넘치고 가득 차서 견디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해어지고 얇아져서 결국 터지고 만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사이가 틀어진 사람이 하루는 내게 내가 그러는 이유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동안 이해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던 것도 같은데) 어쨌든 상대방이 나를 좀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그때 그렇게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사이가 그쯤 되면 상대방의 이해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게 된다. 상대방을 납득시킬 수고마저 귀찮은 일이 되고 만다.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없듯이 똑같이 너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없듯이 나도 너를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해받기 위해서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결국 임계점에 다다른 지금은 이해하기를 관두게 되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꺼낼 나의 에너지가 이미 고갈된 상태.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애쓰려는 내 수고로운 마음은 이미 미어지고 없어졌나 보다. 보상받지 못한 내 마음들은 헤어진 헝겊의 올기 사이로 빠져져나가고 말았다.
살다 보면 의외로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난다. 이해가 안 되는 일에 '그 사람은 왜 그럴까'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애써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원래 나의 모습인데 어느 순간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누군가라면?
소중한 사람이 있거든 상대방의 마음이 미어지기 전에 미리 손을 쓰자. 상대를 향한 내 마음도 차고 넘치다가 결국 내 마음의 자루가 미어져서 해지기 전에 방법을 찾자. 헝겊을 덧대든가 아니면 무게를 가볍게 해 주어 더 이상 늘어지지 않게 말이다. 내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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