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에 시작할 수 있는 일

늦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

by 시코밀

댄스 동호회에 들어가서 춤을 배운 지가 올해 벌써 4년 차가 되었다. 그런데도 춤의 종목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워킹맘이라 늘 시간이 고픈 나는 춤에 쏟을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직도 초급 티를 벗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레슨도 여유가 될 때만 나가는 거라서 비싼 수강료와 달리 마음처럼 금방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동호회에서 나는 나이가 있는 편이라 어쩐지 내 나이 또래에도 춤을 굉장히 잘 추는 사람을 보면 한없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체 젊을 때 춤 안 배우고 난 뭐 하고 있었던 걸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어쨌거나 춤 좀 잘 추고 싶은 마음에 개인 레슨을 갔던 학원의 대표님이 나를 보더니 젊은 나이에 춤을 시작해서 얼마나 좋으냐고 그러셨다.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학원엔 보통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주로 오신다) 너무 늦게 시작해서 후회된다고 했더니 대표님 말씀은 이렇다. 나이 50이나 60에 춤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고. 지금 시작해도 그분들보다는 10년은 더 빠른 거 아니냐고. 앞으로 10년 동안 춤을 춘다면 얼마나 늘겠냐고 하신다. 아, 그렇다면 일단 10년은 기다려야겠다.


얼마 전에 골프도 시작했다. 제 작년에 같이 근무했던 차장님은 매일같이 회사-집 반복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골프를 배우라고 권하셨었는데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다. 몇 년을 생각만 하다가 명절에 가족끼리 스크린 연습장이라도 가자고, 언니만 못한다고 동생들이 하도 성화여서 결국 시작했다. 레슨 프로님은 골프 영재가 나타났다고 하시면서 매 수업 때마다 한껏 띄워주시더니 카톡으로는 시간이 지나야 몸에 익는다고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그럼 그렇지. 역시 나이 때문인 건가. 진작 좀 시작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마음은 당장 라운딩을 나갈 만큼 실력이 빨리 늘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미루기만 하던 것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다.


올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얼마 전에 롱보드를 시작했다. 어릴 땐 인라인도 잘 안 타던 녀석인데 동호회도 가입해서 주말 수업도 부지런히 쫓아다닌다. 남편은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사더니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저녁 라이딩을 나간다. 사무실에 이 과장님은 올해 영어공부를 시작한다고 EBS 라디오 영어 강좌를 자그마치 1년 치를 결제하셨다.


우리는 각자 뭔가를 시작한다. 시작했다가 그만두기도 하고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시작하기도 한다. 결국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엔 결코 늦는 법이란 없다. 개그맨 박명수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거다. 그러니 빨리 시작해라.'


여기 67세에 공부를 시작한 나의 엄마도 있다. 내가 나이 먹는 것만 생각하지 가끔은 가족들의 흐르는 시간까지는 까먹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것이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내 엄마의 유일한 콤플렉스였던가 보다. 엄마가 올해 통신중학교에 입학을 하셨는데 아버지를 병원에서 24시간 밀착 케어를 시작하신 지 7년 만에 주말 이틀을 겨우 간병인을 고용하고 여유가 생기신 거다. 엄마는 못다 한 공부를 원 없이 하리라는 다짐이라도 하신 듯이 이른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계셨다. 엄마의 주말 풍경이 다소 어색했지만 엄마는 영어 선생님이 어찌나 강의를 잘하는지 마음에 쏙 든다고 하셨다.


자녀를 다섯이나 대학에 보낼 때까지 식당일로 고생을 하셨던 엄마의 굵은 손가락 마디 사이로 볼펜이 꼼지락거렸다. white의 발음이 와이트인지 아니면 화이트인지 쓸대는 화이트로 쓰다가 소리는 와이트로 들리는 게 맞는지, daughter에서 gh는 왜 소리가 안 나는지. 명사가 무엇이지. wednesday의 철자가 가장 어렵다든지. 엄마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아기 마냥 종알 종알 신기한 듯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힘들게 뭐하러 공부는 시작했어~ 엄마에게 에둘러 말하면서도 힘들어서 못 배웠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돋보기 쓰시고 공부를 시작한 엄마의 모습은 아름답고 우리 모두의 시작은 그것이 무엇이라도 늘 설렌다. 시작할 것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 그게 무엇이든. 이 봄에 시작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