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에 들어서면서는 마음이 다른 해와는 달리 더 복잡해서 그랬는지 연초에 아들 때문에 늘 속상한 사촌언니를 꼬드겨서 만 원짜리 신년운세를 보러 갔었다. 한적한 주택가에 어느 빌라에 위치한 철학관에 들어가기엔 아직 약속 시간이 남아서 그 집 앞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카페 주인은 여자분이었는데 우리가 자주 들락거리는 동네 아낙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를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았다. 요 앞에 철학관에 왔다고 하자 그분은 놀라면서 여기 그런데가 있냐면서 어쩐지 아줌마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거 많이 봤다고 했다. 만원이면 뭐 철학관 시세를 봤을 때 비싼 건 아니니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나도 그 아줌마들 대열에 낀 건가 하고 속으로 웃었다.
저렴한 비용답게 상담시간은 20여분 남짓. 말이 20여분이지 5분 사이에 손님이 세 명이나 벨을 눌러서 사주쟁이 할머니는 상담하다 말고 자주 일어나 문을 열어주러 나갔고 전화통화도 빨리 끊을 생각을 안 하셨다.
사촌언니는 얼떨결에 그냥 왔다가 올해 운세가 아주 사나우니 떨어지지 않게 밧줄을 꼭 잡고 버티라는 소리를 들었다. 언니는 있으나 마나 한 아버지 덕(나에겐 얼굴도 모르는 고모부)에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냈고 지금까지의 인생도 퍽이나 힘들게 보내왔는데 올해 가장 안 좋다는 말을 듣고 어이없어했다. 언니는 내게 말했다. 아니 지금까지 나는 가장 안 좋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이보다 얼마나 더 안 좋다는 건지 상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괜히 언니를 데려왔나 싶었다. 왜냐면 그 사주쟁이 할머니는 내게는 모든 것이 다 좋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주를 가지고 자기 같은 사람을 찾아오면 안 되는 팔자라나. 팔자가 좋다니 어디가? 아니 팔자 좋은 사람은 뭐 고민도 없나. 뭘 물어보질 못하겠네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진짜 물어보고 싶은 것은 안 물어보고 그냥 심드렁하게 올해 글을 써볼까 하는데 어떤가요하고 마음에도 없는 걸 물어봤다.
사주쟁이 할머니는 시드니 셀던이 몇 살에 데뷔했는지 아느냐면서 나이 50에 데뷔했다면서 나더러 열심히 써보라고 했다. 올해는 환경도 다 받쳐준다면서 좋은 머리 썩히지 말고 뭐든 쓰라고 했다.(머리가 좋은 건 어닌데.) 나중에 책이 잘되면 자기한테 선물도 사오라고 너스레까지 떨면서 말이다. 딱 거기까지 였다. 뭔가 고민이 있어 찾아가긴 했지만 사촌언니의 형편에 밀려 나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언니의 집안 얘기를 들어주느라 나의 고민 같은 건 저 멀리 가버렸다.
언니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전자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하필 담임 앞에서 떨어트려서 학교에 불려 가고 친구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려다 걸려서 경찰서를 간 얘기며, 말이 도통 통하지 않는 형부와 이혼하고 싶어도 아들 걱정 때문에 참고 산다 했다. 언니의 처음은 아닌 가슴 답답한 결혼생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난 그나마 언니보단(?) 나은 삶이지 않나 하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7년째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누구 하나 말끔하게 점을 치는 사주쟁이는 없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짐은 있는 법이다. 올해엔 그래도 좀 나으려나. 마음을 다 잡으려고 희망 한 줌 삼켜본다.
참, 시드니 셀던은 50세에 소설로 데뷔한 건 맞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