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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코밀 Oct 14. 2020

바나나 나무와 밤나무의 사이

우리 사이 거리를 인정해

한 번은 사무실에서 여자 과장님이 '악'소리가 날 만큼 세게 철제 책꽂이에 머리를 찧었어요. 다른 남자 과장님이 그 철제 책꽂이더러 괜찮냐고 농담을 했어요. 사람이 다쳤는데 사람에게 먼저 괜찮냐고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제가 물었죠. 그랬더니 관심을 딴 데로 돌려야 덜 아프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대화를 하고 나면 화가 나는 사람이 있어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룰을 제시하거나 자신이 세운 어떤 아집으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에요. 돌아서면 아 그때 왜 그런 말을 못 했지?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 건데 하는 후회들이 덤으로 생각나게 하는 사람, 대화는 상대방과 같이 나누는 것인데 대화를 하고 나면 상대방은 그대로인데 왜 나만 기분이 나쁜 거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 말이에요. 고백컨데 아주 오랫동안 저는 그 사람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내 감정에 대한 죄책감도 같이 밀려왔어요. 나는 왜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걸까.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그런 마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쩐지 그 마음을 들켜서 벌이라도 받을 것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세상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 거 알겠지만 왜 하필 우리가 한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을까를 오래 생각했습니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지 싶은 생각에 근무지를 이동해야 할까도 고민했습니다.(물론 이동이 쉽지는 않지만) 어디 가나 맘에 안 드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도 없는 데 말입니다.


남편에게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돼. 정말 나만 비정상이야?라고 물었을 때 남편이 그러더군요. "넌 그냥 그 사람이 싫은 거야."라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은 대게 상대방에 대한 나의 미움의 감정의 표현을 때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깨닫는다고 해서 일순간 그 감정이 새로고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의 나 같으면 이해하려고 애를 쓸 테고 이해하지 못해서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에요. 하지만 이제는 저도 나이를 먹는지 그런 의미 없는 타인에게 신경을 이제는 덜 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명리 심리학이란 책에서 다소 위안을 얻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님은 의사지만 명리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책 속에서 저자는 누군가와의 만남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서로의 오행의 기가 전혀 맞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오행은 우리가 태어날 시점의 장소와 그 시각의 우주의 에너지를 말한데요. 책을 통해 서로의 에너지가 맞지 않아 어울리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모두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노력했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어졌어요. 서로 맞지 않는 누군가와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맞지 않는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자책하는 감정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싫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 그만한 이유도 그러나 때론 설명이 안될 때가 있고요. 책에 의하면 그것은 서로의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요. 명리 심리학이란 책에서는 언뜻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한 구절을 인용해서 찾아봤어요.


츠토무는 인간들 중에는 어떻게 해도 공존할 수 없는 타입이 있다는 것을 열두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나나와 밤은 같은 정원에 심을 수가 없으니까.


우리는 그저 둘 중 하나는 바나나 나무이거나 혹은 밤나무 이거나,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그저 같이 있을 뿐일지도 모를 일이에요. 이제는 더 이상 의미 없는 타인이 하는 말에 일일이 마음을 쓸 필요도 없고 내 감정이 그런 식으로 허비되게 둘 이유도 없어요. 이런 사람하고는 일단 거리를 두어야 해요.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상처 받는 자신을 허락하지 말자고 다짐해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최선의 방어를 해야 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거리를 좁혀온다면 메시지를 강하게 표현해서 침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번 허락했다가 다시 상처 받고 후회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니까요. 언젠가 육아전문가 오은영 박사님이 방송에서 하신 말이 기억납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때린 아이에게 가서 사이좋게 지내야지~~ 한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항상 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해요. 아이는 또 맞고 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럴 때는 때린 아이에게 우리 아이와 다시는 놀지 말라고 강하게 얘기해야 한답니다. 다소 생소한 처방을 듣고 저도 놀랬던 기억이 납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내 감정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인데도 저는 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같은 것인데 말이에요. 아마도 내가 상대방을 싫어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미워할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모두를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어쩌먼 이런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나를 아끼는 방법이 될지도 모릅니다.


스멀스멀 찾아오는 부정적인 마음들은 내 마음에 어두운 표정을 만들어 내고 언젠가 그것들은 내 얼굴 표면으로 나올지도 몰라요. 그러니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나를 지키도록 해요.  인간관계에 힘든 나를 토닥이고 싶은 밤입니다.




참고

 - 양창순,  <명리 심리학> (2020, 다산북스)

 - 미아베 미유키, <대답은 필요 없어>( 2007, 북스피어)





Picture by S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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