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온지 1년 아니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야 주방 조리대를 비웠다. 화장대 밑 잡동사니를 모아둔 상자들을 정리하고 옷가게의 미처 팔지 못한 재고들처럼 쌓여있던 옷들을 정리했다. 이건 결코! 완벽한 정리가 아닌데도 하루가 걸렸다.
그동안 정리를 안 하고 산 건 아니었다. 단지 정리라는 것을 잘못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너저분한 잡동사니들을 꾸역꾸역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들에게 알맞은 집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 수납은 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면 정리가 되는 것이고 집을 만들어준 물건들은 더 이상 난잡해 보이지 않고 깔끔해 보이는 거라고. 하지만 틀렸었다. 상자에 차곡차곡 담는 것은(물건들에게 집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정리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물건이 늘어나는 것뿐이었으며 그 수많은 상자 속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을 찾으려면 가지고 있던 상자를 다 뒤져야만 했다.
그동안 만들었던 종이 상자 수납장은 다 버리고 그 안의 물건들도 버리거나 제자리를 찾아 수납해주었다. 안방 욕실을 차지하고 있던 유통기한이 지난 오래된 마사지 크림과 필링젤 등 손이 가지 않는, 언젠가는 쓸 거야 하고 마음먹게 만드는, 볼 때마다 마음을 무겁게 하던 욕실 용품들도 쓰레기통으로 간다. 버리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쓰레기통에 던지기 전에 한번 더 고민한다. 아깝지만, 아깝다는 나의 그 감정들이 앞으로 좀 더 바른 소비를 할 수 있게 해 주길 바라본다.
싱크대 옆 조리대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영양제며 여러 가지 차 티백이며 모든 것이 나와있었다. 눈에 보여야 쓰지 않을까 하는 나의 고정 관점으로 모든 물건들은 수납되지 못하고 나와서 진을 치고 있다. 식기 건조대에 눈길을 돌려보니 가관이다. 우리 집은 국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 데 나와있는 국자가 4개, 쓰지 않는 텀블러와 물통이 대여섯 개, 주걱도 여러 개, 기타 사용하지 않는 주방용품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있다. 안 쓰는 국자는 버리기로 한다. 밥주걱도 여러 개여서 불필요한 것은 비운다. 남는 것은 싱크대 아래 수납장에 일단 집어넣으니 한결 간편해진다.
쓰지 않는 오래된 머그컵과 유리 다기들은 버린다. 이 과정에서도 남편과 실랑이를 했다. 안 쓰는 물건을 잘 버리기로 소문난 남편과 돈 주고 산 건데 그걸 왜 버려 부인은 무엇을 버리고 남길 것인지 합의를 보느라고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20개 이상의 컵 중에서 결국 멀쩡한 머그잔 한 개만 다시 회수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복잡했던 조리대와 싱크대를 정리했더니 우리 아이가 엄청난 감탄사를 연발한다. 우리 집 부엌이 이렇게 모던한 분위기였냐고 하면서 엄마에게도 분명 정리 유전자가 없던 게 아니라면서 놀라워했다. 새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살던 면적이 지난번 집보다는 좁아졌는데 그런 저런 이유로 그동안 정리와는 담쌓고 살았던 엄마를 한순간 부끄럽게 만들었다. 비우고 나니 마음이 뭔가 시원하고 후련하다. 정신이 깨끗하고 맑아지는 것 같다.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 드립니다'라는 책에서 저자 이지영 님은 이렇게 말했다. 정리는 다이어트와 같아서 좋은 상태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좋았던 경험, 정리되고 깨끗해지는 경험은 분명 중요하다.
정리와 청소에 목매는 주부들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청소를 한다는 사람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정리와 청소는 그저 언제든지 필요할 때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강했다. 청소 말고는 자기 힘으로 통제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나 청소에 목을 매는 거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다. 정리는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고 내가 주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남일(우리 집에서는 남편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정리는 비우기다. 버림으로써 비우기가 시작된다. 집은 나와 가족들이 쉼으로써 에너지를 얻는 공간인데도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꽉 채운 상태에서 물건들과 같이 머물렀다. 이상한 것은 그동안 전혀 불편하거나 답답하다고 느껴보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정리를 못하니까, 정리엔 소질이 영 없어라고만 생각했다. 정리의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이만하면 됐지, 퇴근 후엔 저녁 먹고 설거지도 겨우 하던 나였다. 어질러져있는 물건들은 다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이며 나름의 질서가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공간은 한정적인데 나는 버리지는 못하면서 옷과 가방은 자꾸 사들이고 옷을 수납할 공간은 점점 없어지고 그러면서 뭔가 답답해져 갔다. 동시에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 줄 옷이나 가방들은 자꾸 왜 사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스트레스나 우울함을 쇼핑으로 잠재우려고 한 것도 맞다. 애써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무의식에 꾹 눌러 담고 있던 나의 진정한 모습도 이번 기회에 직면해보고자 한다. 정리의 막바지엔 모든 것이 조금은 명확해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