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트집

시작인 건가. 권태기.

by 시코밀

퇴근해서 마트에 들러 급하게 장을 보고 집에 와서는 아이 저녁상을 차려준다. 설거지하고 다음날 아이의 찬거리를 만드느라고 저녁 9시 넘어서까지 부엌에 서있자니 피곤과 동시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남편과 내가 서로 월급을 각자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집안 살림은 거의 내 돈으로 하고 있다. 월세며 아이 학비며 집안의 대소사 등 큼직한 일에는 남편이 다 처리하는데도 왠지 내 돈으로 장을 봐서 살림을 하니 약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가정부는 살림에 돈이라도 안 들지, 아니 되려 월급을 받지. 언제 한 번은 '내가 가정부야?'하고 3일째 투덜댔더니 남편이 앞으로는 저녁 설거지는 본인이 하겠단다. 내 참, 저녁에 일찍 오는 날이 일주일에 얼마나 된다고. 아이 저녁상을 물리고 저녁 설거지까지 하고 있자니 어이가 없다. 이 집에 자기 혼자 사나?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하고 생각할 때가 요즘 부쩍 잦은데 주로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이다.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미리 말하지도 않고 일찍 퇴근해서는 아이 먹을 달걀 스크램블에 남편 젓가락이 갈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애 먹을 건데 그렇게 생각이 없을까 하고. 서랍 문을 잘 닫지 않는 내게 남편도 늘 짜증을 내는데 남편 기분도 이럴까 싶어 한마디 하려던 걸 참았다.


안방 침대에 누워 혼자 유튜브를 보는데 볼륨이 좀 컸었나 보다. 남편이 대뜸 소리 줄이라는 말 안 들렸냐고 이 집에 너 혼자 사느냐고 말하는데 그 말에 그만 나도 욱 해버렸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좀 더 친절하게 말할 수도 있었지 않았냐고. 나도 참고 있는 중이라고.


이 집에 너 혼자 사냐란 말이 다음날 회사에 와서도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남편은 아침에 메시지로 생각 없이 말했다고 사과를 했지만 기분이 풀리지가 않았다.


요사이 늘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질문들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동안 서운했던 일들도 하나둘씩 떠올랐다.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속상했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났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니 어쩐지 아기를 키울 때처럼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자주 투닥거리게 된다. 웬일로 바람이라도 쐬려고 밖에 나가선 웃고 떠들다가 집에 와서 가족끼리 서로 으르렁 대면 그게 가족일까. 가족이라서 우린 서로 으르렁 거렸나?


아, 역시 이제 혼자 살 때가 된 건가. 졸혼이라는 게 뭐 별건가. 서로 지겨워지면 따로 사는 거지.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15년 이상 오래도 살았다. 어떻게 15년을 살았지? 연애까지 합치면 20년 정도? 서로 맞지 않아 힘든데 참으면서 같이 살 필요가 있나. 나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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