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걸로 남편이랑 다투고 기분이 한껏 다운되었다. 아, 권태기인가. 그래 우리 결혼한 지 오래되긴 했지 하고 생각하는 요즘 더더욱 마음이 울적하고 착 가라앉는 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주기적으로 운동도 하고 딸도 자기 할 일 잘하고 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느껴지는데(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서 그랬을까). 남편에게는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만 사소한 말 한마디로 마음이 상한 나는 결국 그날은 화를 내고 분노의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편이 휴대전화 메시지로 미안하다, 그럴 의도는 아니다 사과를 해왔지만 사과를 받아주면서도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예민하게 오버하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는 나는 회사 선배 언니들에게 요금 권태기인가 보다 넋두리를 하게 되었다.
- 언니, 우린 그냥 동거인 같아. 왜 결혼 같은 걸 했을까. 아니 남편은 왜 애 반찬을 그렇게 많이 먹는 거지? 같이 밥 먹는 것도 싫어질 때가 있다고 하던데. 어쩌면 좋아?
- 넌 가끔 이자나. 가끔이면 다행인 거지. 남들도 다 그래~
- 좀만 지나 봐라. 남편 숨소리도 듣기 싫다더라.
- 엥? 우리 남편 숨소리 큰데.
-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그럴 때가 있는 거야~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고 또 힘든 시기가 오고 반복이지.
나보다는 적어도 4살 이상인 언닌들의 하나같이 예상했던 답변들이 돌아왔다.
'그래. 남들도 다 마찬가지겠지. 별수 있겠어. 사는 게 그런 거 지.'하고 사내 메신저를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회사 선배 언니들이 연차를 내고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한다.
무심코 내가 "파주 마장 호수 출렁다리 어때?"하고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을 제안하자마자 어쩐지 우리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당일치기 여행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30분도 안되어서 갈 사람을 섭외하고(다들 선배 언니들!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회사 다니느라고 자신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주기 힘들었던) 휴가 낼 날짜를 정하고 출발 장소를 정했다. 갑자기 신이 나기 시작했다. 나만의 휴가라니! 차를 운전할 셋째(나이 서열상) 언니가 만나는 시간을 정했고 우리들은 단체로 각자 연차를 내고 그렇게 여의도에서 파주로 출발했다. 이것이 우리의 첫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