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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은 출렁이는 다리에 놓고 가요

by 시코밀

우리 멤버는 나까지 4명. 입사 16년 차인 나는 우리 사무실에서도 내 밑으로는 까마득한 후배들 뿐인데 언니들과 함께라면 늘 막내가 된다. 이제는 앞으로 어디 가나 후배들이 주로 해주던 맛집 찾기며 장소 추천이며 다시 돌아온 막내의 역할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텐데 스마트폰 만지는 것도 가끔 버퍼링이 걸리는 나인데 큰일이다.


이날 운전을 맡은 셋째 언니(나이 서열상)회사 선후배들과 하루 바람이나 쏘이고 온다 했더니 친동생에게 "아니 휴가인데 왜 회사 사람들을 만나?"하고 질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서로 다 각자 다른 사업소에서 근무해서 얼굴 보기 힘든 사이, 늘 사내 메신저로만 얘기하다가 갑자기 뭔가에 꽂힌 듯이 약속을 정했다!


서로 힘들 때 상사들 험담도 같이 해주고 아이들 키우는 정보도 같이 공유하고 헌 옷도 물려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자기 일처럼 머리를 맞대고 얘기해주곤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토록 사랑스러운 마녀 같은 선배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달리는 차 안에서 혼자 생각했다.


파주로 출발하는 기분은 그저 날아갈 것 같다. 가을 날씨는 또 얼마나 맑고 따사로운지. 그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잊은 채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우리의 근심들도 하나둘씩 바람에 날아가고 있었다.


월요일 오전인데도 주차장이 거의 찼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출렁다리도 건너본다. 그나마 주말이 아니라서 한가하게 다리를 건너고 둘레길을 산책했다. 날씨는 완벽하고 하늘은 높고 단풍도 절정이었다. 걸으면서도 결국 우리는 가족 얘기며 회사 얘기 뭐 다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로 정신없이 떠들어 댔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분명 마음속까지 힐링이 되는 일이다! 함께 걷기! 그것은 마음이 불편한 사람과는 절대 하기 힘든 일이다. 자고로 여행과 음식은 같이 하는 사람들이 누구냐가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 휴가.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오전 내내 둘레길 산책을 하고 근처 맛집으로 쌈밥과 더덕구이를 먹으러 갔다. 더덕구이는 아삭했고 쌈밥도 우리가 아는 맛이지만 그래도 아침을 다들 제대로 먹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 아닌 운동?을 한 탓에 배불리 점심을 먹어치웠다. 눈이 절로 힐링이 되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쌓이고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넓은 들판을 정원으로 삼은 예쁜 카페에 들러 달달한 디저트와 커피도 빠질 수 없겠다. 자연 속에서 마시는 커피는 그 가격이 비쌌지만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아줌마 4명이서 카페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으니 갑자기 두려울 게 없어졌다.


아이같이 신이 나서 우리는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 사진 찍히기가 어색하다던 아줌마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다음번에 나갈 땐 셀카봉도 준비하잔다. 이 일관성 없는 아줌마들을 봤나. 모일 때는 서로 날짜가 되니 안되니 말이 많더니 벌써 다음번 갈 장소 얘기가 나온다.


카페에 앉아 얘기 중에 얼마 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어떤 가수분이 혼자 밤에 2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서 별구경을 간 내용이 나왔다. 다들 그 프로그램을 본 모양이다. 그리고 그게 너무 부러웠단다. 부러운 사람 여기 1인 추가요. 대체 거기가 어디냐며 담엔 별을 보러 가자면서 한바탕 시끄러웠다. 밤에 별구경 가는 게 뭐라고 그게 그렇게나 하고 싶었나 싶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단순히 별구경을 떠나서 혼자만의 힐링의 시간을 위해서 어디든 그렇게 훌쩍 떠날 용기와 여유가 부러웠던 게다.


각자 다들 매일 같은 일상 속에서 비슷한 지겨움과 힘듬과 스트레스들이 있었나 보다. 그게 권태기이든, 갱년기이든 자녀문제든 혹은 상처 받은 인간관계든 우리는 각자 그리고 함께 '내 맘대로 극복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랑 자연이 멋진 곳으로 가서 함께 먹고 시간 보내고 그게 즐거움이지. 가끔은 가족들에게서 벗어나 마음속에 새로운 바람과 햇살을 담고 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 가슴속으로 들어온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새로운 풍경들은 내게 가족의 소중함과 나이 듦의 현명함을 한층 더 깊이 일깨워 줄 것이다. 같이 직장 상사 험담에도 동참해 주고 축하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는 재잘재잘 말 많은 상냥한 마녀들이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가 사는 데 힘을 얻는 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어서가 아닐까. 더 열심히 재잘대면서 재미있게 살 궁리나 좀 더 그리고 더더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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