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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코밀 Apr 28. 2021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맨 처음 모임을 만들 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저 무작정 모여서 웃고 떠드는 만남보다는 만나서 산에도 가고 트래킹도 하면서 체력도 키우고 마음도 키우자고 다들 한입으로 얘기했었다. 한마디로 걷는 모임이었다. 체력이 붙으면 연말엔 한라산 설산 등반이라는 거대한 목표도 암묵적으로 세워 두었다. 연말에 한라산에 갈거니 그리 알라고 남편에게 큰소리를 쳐놨다. 그런데 제대로 트래킹다운 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이 생겼다. 그리고 별거 아닌 줄 알았다.


내가 발목을 삐었다. 우리 모임의 두 번째 목표였던 별 보는 모임을 갖기도 전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잠시 딴짓을 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다. 누구나 일생에서 한 번쯤 발목 좀 삐고 그러지 않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의사는 내게 당분간 무리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은 당분간은 크고 작은 운동을 비롯해 기타 다른 여가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삶의 질을 정말이지 한없이 떨어뜨렸다. 사람 일은 참으로 앞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코로나 시국이라 많이 돌아다니 못하니 언니들이 걱정 말라고 발목이 다 나으면 가자고 했다. 그 와중에 우리 멤버 중 왕언니는 자궁에 작은 혹을 떼어내는 수술로 일주일 넘게 입원을 했다가 퇴원했다. 서로 각자 아픈 것이 아물고 바쁜 일 지나면 다시 뭉치자면서 다음 일정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금방 나을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발목이 삐어서 고생 아닌 고생을 한지도 4개월째 되었을 때도 붓기와 통증이 가리 앉지 않아 결국 다니던 병원을 바꾸었다. 새로 간 정형외과에서는 치료와 함께 재활치료를 열심히 해보자고 했다. 운동으로 근력을 키워줘야 발목에 가는 부하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거기도 효과 없으면 신경외과로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시골에 계신 엄마는 벌써부터 성화다.


남들에 비하면 삔 정도가 약하고 걸을 수도 있으니 이만하면 아픈 것도 아니지만 걸을 때마다 복숭아뼈 밑으로 느끼지는 오랜 통증은 나를 정말 우울하게 만들었다. 정말 늙어서 차도가 느린 건가. 영영 조깅은 꿈도 못 꾸는 건가, 4개월 동안 아픈 발목으로 운동다운 운동을 하질 못하니(다들 안 써야 낫는다고 하니 더 안 움직인 탓도 있었다.) 답답함으로 먼저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을 발목이 아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림으로 나뉠 지경이었다.


"선생님 얼마나 운동해야 좋아질까요?" 말했다가 아직 희망이 있으니 2-3개월 힘들게 해 봅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 제대로 된 운동을 시작한 게 어디야 하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 아프면 손쓰기도 힘들다는데. 더 나빠질 수도 있었는데 이만한 게 다행이지 싶어 나를 다독였다.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은 영어 한마디가 떠오른다. It could have been worse.  그래 불행 중 다행이다.


바쁜 병원 일정으로 대기시간이 길어 평일에 휴가를 내고 치료를 오는데 이제는 슬슬 눈치 보인다고 했더니 물리치료사가 '나중엔 동료들이 꾀병이라고 하실 거예요~' 이런다. 세상 사는 거 참 쉬운 게 없다. 내 몸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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