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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앞에서 멍 때리기

강원도 당일치기

by 시코밀

밤에 별을 보러 가기는커녕 출렁다리에 다녀온 이후에 거의 6개월이 흘렀고 더불어 발목이 아픈지도 이제 6개월이 되어간다. 코로나 19 상황이 나아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의 발목 통증은 참 많은 나의 의지들을 꺾어놓고 있었다. 목적은 애초 걷기인데 여전히 본격적으로 걷지를 못하고 있는 우리 멤버 언니들은 무리하지 말라고 하지만 애가 달은 사람은 나다. 평소 취미인 춤 수업을 들으러 갈 수도 없었고 조금만 무리한 운동을 하면 여지없이 복숭아 뼈 밑이 아파왔다. 정말 우울했다. 우울증이란 나아질 희망이 없는 상태라고 하지 않던가. 발목 통증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하루 기간을 사이로 왔다 갔다 했다.


봄은 점점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음을 매일 달라지는 아침 기온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의 통증 때문이지 몰라도 어디론지 가지 않는다면 억울해질 날씨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의 아픈 발목으로 산행이나 거친 트래킹은 무리였다. 서로 각자의 인고의 시간을 버틴 우리 중 왕언니가 강원도 가서 바다나 보고 오자고 제안했고 선배들과 나의 두 번째 여행지는 속초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 아쉽게도 둘째 J언니(나이 서열상의 순서)는 참석하지 못했다.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대장암 판정을 받으셨는데 병원에 왔다 갔다 하시느라고 정작 이 날은 휴가를 내지 못했다. 수술 날짜를 잡으셨는데 나중에 회복하시게 되면 다시 네 명이서 뭉치기로 하고 이번엔 세 명만이 출발했다.


당일치기로 강원도 가기 이렇게 쉬웠던가. 평일 다 같이 휴가를 내고 이번엔 체구도 제일로 작은 왕언니가 엄청 큰 SUV를 끌고 오셨다. 가는 길목이라 언니들이 우리 집 앞까지 나를 픽업하러 오신다기에 김밥과 음료는 막내인 내가 준비했다.


남들 일할 때 놀러 가는 기분이라니. 불면증 때문에 간간히 고생을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젯밤 잠을 설쳤다던 셋째 S 언니는 혼자 뒤 자석을 차지하고 가는 길에 눈을 붙여야겠다고 했지만 결국 속초까지 가는 동안 밀린 수다로 인해 한숨도 자지 못했다.


휴게소에 들러 사온 김밥에 커피를 마셨다. 평일이지만 가평휴게소에 사람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가 잠시 주춤거리는 하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나마 평일이라 마침 적당히 여유로웠다. 우리들은 휴게소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으면서 눈앞에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평일에 마음대로 여행 다니는 이들을 잠시 부러워했다.


점심을 맛있게 먹으려고 아침은 건너뛰려 했지만 셋이서 김밥을 깔끔히 먹어치웠다. 점심 장소로 이동하는데 어서 맛집을 찾아보라고 언니들이 성화다. 속초로 발령받아 근무하는 후배에게 톡을 보냈더니 유명한 물회 식당이 두 군데나 나온다. 하지만 언니들이 이미 가봤단다. 하는 수 없이 예전에 가족들과 방문했던 물회 집으로 안내했다. 다행히 여긴 두 분 다 처음이라 하시니 어쩐지 막내의 본분을 다 한 것 같다. 이곳 식당은 은근히 맛집이라서 재료가 떨어지면 그전에라도 문을 닫고 평상시엔 오후 2시 반이면 문을 닫는 곳이다. 아는 맛이라 더 반갑고 맛있는 가자미와 오징어 물회로 속을 채우고 근처 영랑호에 가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영랑호는 굉장히 큰 호수였다. 몇 년 전에 강원도에 큰 산불이 났을 때 뉴스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많은 곳이 불에 탔었다. 그래선지 여기저기 민둥산이 남아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호수는 맑은 옥색이다. 호수를 따라 긴 산책로를 산책했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봄 햇살은 걷는 내내 우리 등 뒤를 따라다녔다. 시골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피어있는 진달래도 볼 수 있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늘 자리 한편을 내주고 같이 있는 사람들과 더 친해지라고 하고 마음은 더 여유로워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으로 자주 가려고 하나보다.


우리의 당일치기 속초의 마지막 일정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이다. 영랑호에서 산책하면서 소화를 시킨 우리는 동해바다 백사장을 앞마당 삼은 듯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카페에 도착했다. 정원엔 예쁜 꽃들도 많아서 한참이나 카페 여기저기를 구경을 하였다. 날씨가 좋고 바닷가인데도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야외 테라스와 해송 밑 테이블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인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까지 함께 오는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이겠지.


커피 주문도 잊은 채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흔들 그네에 셋이 나란히 앉아 한참이나 셀카를 찍었다. 이번에도 우린 셀카봉은 가져오지 못했다. 셀카봉 들 힘도 없다나 어쩐다나. 앞에 가서 서보라고 얘기하면 싫다고 하면서도 어느 센가 가서 포스를 잡는 왕언니. 사진에 찍히기는 싫어하면서 찍힌 사진 중에 마음에 든 게 하나도 없다면서 다음 여행에서는 더 멋진 사진을 찍어보자고 말하는 S언니. 한참을 재잘거리던 우리는 먼바다를 보며 멍을 때렸다.


집에 가서도 푸르고 너른 바다를 기억하려고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약발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힘들 때마다 문득 떠올리고 싶어서 자꾸자꾸 더 먼바다를 쳐다봤다. 갑자기 인생이 조용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인생 뭐 있나 하는 생각에 우리는 잠시 세상 소용돌이 속에서 힘들게 서있던 자신을 내려놓는다. 서로 말은 없어져도 각자 행복한 순간을 만끽한다. 여행의 목적은 늘 이렇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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