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지

사회복지 실습을 마치면서,

by 숨콩 maumssum

“비록 여러분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실습 마지막 날, 깊숙이 허리 숙이며 인사했던 마음은 진심이었다.


긴장감에 바짝 얼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첫 출근한 날이 떠오른다. 내 얼굴에 서린 비장함은 보자마자 덥석 안아주는 경지 언니의 품속에서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내가 실습 한 샛별주간보호소에는 발달장애, 정신지체, 자폐 등등의 다양한 병변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오전과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에 대한 첫인상은 표정이 밝고 온화하다는 것 이었다.


센터에서는 기초 한글이나, 미술, 음악 활동 이외에도 체육 활동과 뇌블럭 프로그램을 진행 하고 있다. 재활치료사나, 다양한 외부강사들이 프로그램을 더욱 알차게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복지사 선생님들의 업무 범위가 상상 이상 이었다. 사회복지사는 체육, 미술, 음악에 능해야 하고, 심지어 운전부터 회계능력까지 필요한 직업이다. 현장에서 직접 실습 해보지 않았더라면 미처 몰랐을 것이다.


물론 난감할 때도 많았다. 도저히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들의 발이나 팔을 마사지 해주면서 교감할 수 있는 것을 배웠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과 미소에도 좋고 싫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도 배웠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백설공주 연극 연습이었다. 형식적인 수업이 아니라 진짜 무대에 서기 위한 준비였다. 파견 나온 이야기 선생님, 복지사 선생님들, 장애인 친구들 모두 하나가 되어서 연습을 했다. 대사며 동선이며 쉬운 건 하나도 없지만,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모습이 많은 울림을 주었다.


언젠가는 클라이언트가 뇌전증 전조 증상을 보였는데, 아무도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뇌전증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 현장은 접하니 사회 복지사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실습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실습을 시작하자마자, 12년간 병상에 계시던 아버지를 예상치 못하게 먼 곳에 떠나보내야 했다. 황망한 마음에 실습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했지만, 샛별 친구들의 미소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위로를 받고 있었다.




실습을 몇 주 간 하다 보니 귀에 자꾸 들리는 문장이 있었다.

“그럴 수 있지.”

복지사 선생님들이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사고를 쳐도 ‘그럴 수 있지.’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았던 그 문장이 어느 순간 귀에 박히고 마음에 박혔다. 식판을 엎질러도, 넘어져도, 실수를 해도 ‘그럴 수 있는 거’였다. 삶에 엄격한 잣대를 매기고 쫓기듯 살아온 내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실수투성이 실습생을 거리낌 없이 받아주시고, 아낌없이 지도해주신 샛별주간보호 센터의 센터장님과 복지사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15명의 내 소중한 첫 클라이언트이자 친구들.

부디 건강하기를,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어디서든 샛별 친구들의 ‘그럴 수 있는’ 일상을 응원 할 것이다. 샛별주간보호센터 파이팅!


25년 02월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 중요한 결심을 한가지 했다. 실습을 끝내고 나서도 눈에서 잊히지 않던 샛별친구들과 앞으로도 인연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샛별 친구들의 후원자들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우리의 ‘그럴수 있는 이야기‘가 앞으로도 쭈욱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