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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Jul 02. 2020

[시집서평]'피어라 시냥'_ 김자흔;

또 한 계절 살아남기를....

평소에 하지 않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길냥이 급식소에서 ‘피어라 시냥’의 출간소식을 듣고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양이에 대해서 시를 쓸 수 있는 감각은 어떤 것일까. 고양이 두 마리를 모시고 사는 집사이지만 육묘일기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서평단 모집에 호기롭게 참여 신청을 하고 말았다.

소포를 받은 건 새로 이사온 집에 적응하느라 한창 바쁜 시기였다. 남편없이 혼자서 이사를 끝낸 직후라 무척 지쳐있었던 나에게 ‘피어라 시냥’의 도착은 반가운 선물이었다. 단단히 포장된 서류봉투에서, 내 이름이 박힌 친필사인에서 정성스러움이 느껴졌다.

책을 받기 전에는 그저 고양이의 귀여움에 대한 시집이라고 예상했지만, ‘피어라 시냥’은 고양이의 매력뿐만 아니라, 거칠고 슬픈 삶, 작은 몸으로 맞서야 하는 공포와 체념까지 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고양이만의 신비로운 주술적인 서사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피어라 모든 시냥은 어쩐지 인간이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들면서도 인간이 왜 그렇게 고양이에게 복종(?)하는지를 설명한다.

"진묘 똥꼬는/ 연꽃무늬 똥꼬//까만 엉덩이 중간에/흰 연꽃 하나 달고//이리 통통//저리 통통//아이고 저 가이나//판판 부끄러운/줄도 모르고/(-유쾌한 똥꼬 중)

‘유쾌한 똥꼬’처럼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고양이의 높이에서 바라본 고양이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시도 더러 있었다. 현학적이고 어려운 시어는 없었다. 그래서 빨리 읽히는 시집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시 글귀마다 걸려 있는 서로 다른 이름의 고양이 각자의 사연이 페이지를 하나하나 쓸어보게 만든다. 시인이 아니었더라면 이슬처럼 잊혀질 이야기가 시집에서 아늑한 보금자리를 찾은 듯하다. 이야기는 별처럼, 고양이의 눈처럼 반짝인다.

"봉합된 왼쪽 눈은/항상 웃는 눈썹달//.....네 눈썹달/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가슴께로 날 선 금 하나/ 스읏 지나간다// 그래도 깜냥이 왼쪽눈은/ 언제나 웃는 눈썹달// 한 달 하루 뜨는 보름달/ 희망을 기다려주지(-웃는 눈썹달 중)

피어라 모든 시냥’은 고양이를 만나는 오솔길 같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마다 다양한 고양이가 있다. 산책을 하듯 고양이 하나하나의 사연에 따라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마냥 미소짓게 만드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눈물을 글썽이게 만드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아찔하게 흔들리는 살구꽂 가지 위에서 노는 아기고양이가 있고(아기 고양이 봄날을 놀다), 도서관까지 따라온 고양이 수염이 있다. (그예 시 한 편 부탁)'

"잡것을 의식 않는 녀석의 단잠이 방해될까/ 전화벨이 울려도 나는 일어설 수 없네"(김담비)처럼 집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양이도 있다. "이집트 사막에서 불현듯 나타나/ 내 품에 안겨 든 뜨겁고도 핫한/ 하나의 블랙 망고/ 고양이"(블랙망고이야기)처럼 완결무구한 고양이도 있다.

"그들의 입은 ㅅ으로 돼 있다/.....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 그들은 전부 침묵으로 일관해버린다"(명명)

고양이의 입과 시옷이 춤을 추는 기묘한 시는 침묵으로 모든 말을 초월한 고양이의 신비로움을 보여준다. 고양이는 인간에게 딱히 중요한 고기나 노동 가죽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4000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공존해 왔다.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다. 그저 늘어지게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고 가르릉 거리기만 해도 인간은 그저 북실북실한 생명체에 녹아버리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나는 우리집 고양이 호식이와 함께 시집을 읽었다. 오만 불손한 우리 호식이에게 읽어 주고 싶은 불손의 힘. 하지만 어쩌랴...불손함마저도 매력인 것이 고양이인데ㅎㅎ. '피어라 모든 시냥'은 나에게는 이제 막 이사온 나에게 집들이 선물같은 시집이다.

호기롭게 서평단에 참여했지만 시집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작은 고양이들의 서사는 가볍지 않았고 감히 내가 평한다는것이 가당키나 할 것인가. 시집을 여러번 되새겨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시인이 고양이에 대해 노래할 수밖에 없었듯이 나 역시 시집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은고개 도로에 목숨을 바치고도 공손한 얼룩무늬 길고양이'의 공손한 죽음처럼(공손한 죽음)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고양이의 슬픔을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도 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길거리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길아이들을 생각해본다.

또 한 계절, 살아남기를

이것은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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