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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Feb 23. 2022

[육아에세이_한솔교육 핀덴 연재]다행이야

그래, 엄마는 괜찮아


“으아악!”

 저녁을 준비하던 내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아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발 등에는 피가 흐르기 시작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발목을 넘어 종아리까지 올라온다. 눈물이 핑 돌아 주저앉아 버렸다.

 

 주방의 싱크대 옆에 서서 아기 먹을 저녁밥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이제 18개월이 된 아기는 주방에 선 엄마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엄마가 하는 모든 일에 참견해야 직성이 풀리는 18개월 아기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바람에 마음이 너무 급했다. 서둘러 아기가 먹을 음식을 잘게 잘라보겠다고 왼손으로 주방가위를 든 것이 화근이었다. 조급하게 가위를 들려다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날카로운 가위 날에 찍혀 욱신거리는 발을 끌며 간신히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 시간 내내 화가 났다. 내가 다쳤기에 망정이지 아기가 다칠 수도 있었다. 나는 어른 이나 발이 다쳤지만 아기는 더 크게 다쳤을 지도 모른다. 떨어진 그릇에 부딪혀 빠져버린 발톱이 다 자라난지도 얼마 안 됐다. 그때도 혼자 아기 밥을 준비하다 일어난 상황이었다. 주방에 울타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하고 악을 쓰고 우는 아기를 못 견디고 울타리를 열어준 것 이다. 잠깐도 혼자 못 있는 아기에게도 화가 나고 그걸 열어준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생각하다 보니 혼자 아기를 키우게 만든 남편에게 까지 화가 난다.

 

 남편은 외항선을 타는 항해사이다. 석탄을 나르는 상선을 타고 전 세계를 가로지른다. 6개월 정도 배를 타야 2개월의 휴가를 얻어 배에서 내린다. 그렇게 거대한 배를 타고 일하는 남편의 모습에 반해 결혼 한 것에 후회는 없다. 남편은 다정한 성격이고, 휴가를 얻어 집에 오면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남편이 육아에 적응하기에 두 달의 휴가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적응할라 치면 배를 타러 나가는 남편의 뒤꽁무니가 얄미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오늘처럼 혼자 아등바등 하다 다치는 날에는 괜히 더 서럽고 죄 없는 남편이 미워진다.

  

 가위가 떨어진 상처에 딱지가 앉고 나서야 연고를 바를 정신이 들었다. 그 사이에 발가락과 발 뒤꿈치에는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다친 곳에 꼼꼼하게 연고를 발라주었다. 이제와 보니 상처가 크지도 않고 많이 아프지 않지만 엄살을 피우며 아기에게 엄마 아프니 호~해줘! 라고 부탁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가 다가와서는 입을 오므리고, 서툰 손으로는 발등을 찰싹 때린다. 아직 힘 조절이 안 되는 아이 나름대로의 ‘호~’와 쓰담쓰담이다. 아픈 것도 화가 나던 것도 모두 잊고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혼자 아기를 키우는 것은 다치고 아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정신이 없는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다칠 일이 생긴다. 완벽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 역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아무리 다쳐도 큰 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다시 새살은 다시 차 오를 것이다. 이제야 이 정도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이 많은 아기가 다칠 일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고, 내가 다칠 일도 남편이 있는 태평양만큼이나 가득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 다행’인 상처로 지나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아기는 당분간 주방에 출입 금지다. 이번에는 진짜다!


[핀덴 육아에세이] 결혼했지만 나 혼자 산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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