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무봉 옛글

숲길

조성범

by 조성범

숲길

산등성이를 헤치고 걸으면
풀숲이 옷고름을 풀었다 닫고
이방인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다.

목젖은 이미 땀내로 헐떡거리고
풀냄새 가득 코끝을 여민다.
한참을 뒤꿈치 들고
아련하게 걷고 있노라면

그제야 나뭇가지, 잎사귀를
연신 흔들어 솔바람을 흘리며
숲길을 열어준다.

오솔길에는 왕소나무, 적송, 잣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큰키나무
꼬불꼬불 잔가지를 마구 흔들어
그림자를 깨운다.

녹빛 가슴을 연 숲
눈 멀은 속세의 끈나풀을
싹둑 잘아내어 흙바닥에 매장하고
푸른 입김을 호호 불어

헛헛한 몸뚱이에
새살을 돋운다.




2013.6.22.

조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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