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범
“알수 없어요”
“생존만을 위해 사는 삶은 처참한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잘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난한 자들의 공격을 받고 재앙을 얻게 될 거라고도 말했습니다.” (책, 47쪽)
길을 가다
길에게 묻지 말고
길을 가다
길이 되어라
길을 가다
길이 길이고 길이 아니니
길은 무엇이고
길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
“공장의불빛”
“어둠이 슬픔을 머금고 짙어질수록 공장의 불빛은 눈부시게 빛납니다. 겨울바람도 더욱 차고 거세게 유리창을 흔들어댑니다. 며칠 지나면 2014년
달력도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공장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수도권 변두리에 있는 작은 공장들은 더 나빠진 듯합니다.” (책, 118쪽)
노동자의 삶은 고문이고
숨 쉬는 매 순간이 지옥이네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살 수 없다네
10시간 노동으로 150만원 벌어서
아픈 아내 병원비 대네
이 지옥 불 철철 끓어 넘치는데
노동의 가슴은 시베리아 벌판이구나
자본가의 서릿발 쓴웃음 지으며
못 배우고 나이 먹은 할아범 닦달하네
늙어빠진 할멈 등에 올라타
눈먼 폭력의 자본 앞잡이 되는구나
. .
“시인강이산”
“잎도 꽃도 남김없이 지워버린 뒤
눈도 그쳐 허름한
늙은 산
나무들 이름도 꽃 모양도 잊어버린 산
그 산길 외진 바위 곁 잔설 위에서
얼어가는 깃털 하나를 보았다
아, 새였던가
(책, 130쪽 늙은 산)
한숨 지고
걷는 곳, 숨이 이어져
두 숨 지고
걷고 걷는 곳, 숨이 이어져
한숨만이 절로 피네
절망의 늪에 핀
자유의 열망 밀알이 되어
노동의 나라가 되네
. . .
“그여자의 세상”
“최승주는 아내의 유해 반을 집 뒤 은행나무 밑에 묻고 나머지 반은 붉은빛이 감도는 달빛 흐르는 남한강 강물 위에 흘려보냈다. 그녀는 갔지만 그녀의 체취는 집 안 구석구석에 배어 슬프게 반짝거렸다. 그는 생전에 더 많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두문불출하고 술만 마셨다. 날이 추워지면서 강물은 더 푸르러졌다. 산속의 나무들도 헐벗은 몸을 차갑게 드러내며 얼어붙고 있었다. 꽃도 나무 이름을 잃어버린 채
순식간에 산이 늙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부유면 하늘 위를 맴돌던 길잃은 흰 새 한 마리가 그 산으로 날아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책, 265쪽)
선과 악이 하나의 몸일까?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
삶과 죽음은 존재의 강물에 놓인
실존의 웃음일까?
이 순간, 이 찰나의 번뇌
사랑하는 것은
나의 전 존재를 주는 것
숨 한 조각 쉴 때
거추장스러운 이념의 자본으로부터 해방하라
숨 한 조각 남아있을 때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순결하라
나, 그대
사랑한다 말하라
. . . .
“폐허를보다”
“굴뚝 밑에서 일제히 비명이 터져 올라오지만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기를 쓸수록 울타리는 더욱 좁아져 그녀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노동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책, 320쪽)
노동으로 한평생 길들여진
노동의 생사고락을 걷노라니
삶은 없고 노동자만 남아서
자나 깨나 질곡의 사슬만 짜고 있네
노동으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다
노동의 생사고락 끝낼 때
죽음은 없고 노동자만 남아서
자나 깨나 자유의 사슬만 짜고 있네
노동으로 이 삶 걸어가노니
노동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자유와 노동은 동행하는지
자나 깨나 노동자의 세상을 찾아가네
. . . . .
이인휘 작가의 노동소설을 두 권째 읽으며 가슴 한구석 서늘한 양심이 싹을 튀우다. 나로부터의 혁명을 주문한다.
늦게나마 그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돋음체와 " "는 소설의 차례와 글 인용 부분이다.
*<폐허를 보다> 이인휘 저, 2016.10.3. (주)실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