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무봉 옛글

바람의 의자

조성범

by 조성범


찬바람에 쫓겨나

낭인이 된 바람아 나를 아니


의탁할 데 없어

네온사인 밤바람을 피해

숲이 우거진 아시아선수촌 공원에 숨어들었지


시골 바람이 갈 데라고는 나무와 풀이 있는,

빨간 바람이 패싸움하는 골목에는

얼씬거리지 못했유


밤이 깊어 달빛도 게슴츠레 취하면

바람도 비틀거리고 달그림자 바람을 덮고 잠이 들고

뜯어먹을 데 없는 앙상한 육신에 들러붙은 모기떼

벤치에 하루를 살고 놓는 콧잔등에 올라타

온갖 시위를 했다


그리운 모기야 아직도 잘 있느냐

네가 좋아하는 따땃한 여름이 오니 신났어

아무리 배고프더라도 가려서 밥술 들게


바람이 앉은 의자에는

사연이 세월에 스며

바람을 쓰다듬고


2013.5.27.

조성범


*24년 전 아시아선수촌 공원의 벤치에 누워 밤을 먹던 그때가 떠올랐어요.

40여 일 간의 벤치 노숙이 제겐 평생 아물지 않은 노여움이었어요.

시골에서 올라와 오갈 데 없을 때, 벤치는 저의 집이었고 꿈이었습니다.

아련했던 기억을 치료하게 해 주신 장현우 작가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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