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심시심

도회지의 비꽃

by 조성범

비가 비를 뚫고 빗방울이 되어

빈 하늘을 긋는다

하늘을 덮은 둥근 오색찬연 한 가림막

떼 지어 가다 멈췄다 가다를 반복하다

우산에 부딪힌 비

파열한 오장을 안을 새도 없이

보도 위에 도로 위에서

차바퀴에 치이고 발자국에 밟혀

소리는커녕

비꽃으로 환생하지 못하고

무참히 도륙되어 하수구에 버려진다

산과 들, 개울에 내리지 못한

줄을 잘 못 선 빗물

붕어의 아가미에 닿질 못하고

들풀의 마른 뿌리를 적시기 전에

하늘님의 자식 비님이

게거품을 물으며 길가에 쓸어져

유언 한마디 뱉지 못한 비

시궁창의 목구멍 속으로 걸어가고

빗방울이 물을 놓으며 눈을 감는다


20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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