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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범

by 조성범

도서관은 살아있다 22시에 철야 열람실을 남겨두고 개가식 서가 등 몽땅 폐문한다. 셔터를 내리며 원하지 않는 시간을 자르고 공간을 폐절한다.


이른 아침부터 미화 아주머니의 땀으로 얼룩진 도서관에 빛이 몰려올 때 즈음 청춘이 씩씩하게 하나 둘 두툼한 미래를 지고 달려온다. 전장에 출정하는 병사의 눈빛이 그리 맑고 무거웠었는지, 덜떨어진 눈빛을 비비며 도서관 게이트에 학생증을 대고 안으로 안으로 책 숲으로 들어온다.


밤새 뒤척이던 서가의 책 무덤들 책갈피로 재빠르게 문자를 덮고 지긋이 눈을 감고 그 누가 나의 볼에 뽀뽀하며 안아줄지 무상무념으로 기다린다. 주일에 아니 일 년이 돼도 와주지 않는 청춘의 손끝을 무턱대고 옹알옹알 거리며 기다리다 보니 한낮이 꺼지고 또 한밤이 온다.


도서관은 문 닫은 24시 이후가 가장 볼만하다. 책들이 마구 달려들어 말을 걸고 등짝에 올라타 간지럼 핀다. 수만 년의 억 겹이 날마다 손끝에서 놀다가 콧구멍으로 들어가 입술로 넘치고 때론 심장에 눌러앉아 놀아달라 애걸복걸하는데 지쳐 잠깐 책갈피 문자 속으로 훅 입술을 밀어 넣고 과거의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상이라.


도서관은 책이 밤마다 어둠을 쓰고 가면놀이를 한다. 오늘은 화려한 옷을 걸친 야한 책갈피 춤추자 하면 어쩌지


2017.3.28.
조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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