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섭 선생의 "장로교식 아침식사": 문학의 힘을 기대하며...
고등학교 시절, 무슨 멋이 들었는지 <문학사상>을 보곤 했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이어령 선생이 편집했을 것이다. 꽤 두꺼운 잡지였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저 <문학사상>에 담긴 작품들과 평론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이어령 선생의 탁월한 수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고 매료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문학사상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문학은 먹고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내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각인시켜 주었을 것이다. 가끔 베스트셀러 소설을 훑어보기는 한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뜻 문학에 손이 가질 않는다. 자꾸 경영학적으로 세상을 본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일 것이다.
2016-08-20(토),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마침 <문학사상>이 배달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받아본 잡지다. 서강대 MBA 과정에서 내 강의(리더십 개발론)를 들은 이혜섭 선생이 작년 소설가로 등단했는데 2016년 8월호에 그녀의 소설이 실렸다. "장로교식 아침식사"라는 단편이었다. 단숨에 읽었다. 시차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잠시라도 몽롱한 상태를 벗어났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 그녀의 페북 메시지에다 이렇게 답글을 썼다.
잘 읽었어요... 단숨에 읽히는 맛이 좋아요. 내가 고민하던 것을 이렇게 부드럽게 그러나 아프게 찌를 수 있다는 것이 기뻐요. 이것이 소설가들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공헌이겠지요.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어야겠어요. 고마워요.... 독후감을 브런치에 올려도 되겠지요?
나는 우리나라 경영학부와 MBA 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는 경영학적 사고에 크게 실망하고 있는 사람이다. 전략적 사고의 승리 이데올로기에 치를 떨고 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서강대 MBA 과정에서 나는 전혀 다른 경영학을 가르쳤다. 인간존중의 경영학과 리더십을 강조했다. 경영학은 철저하게 인문학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근본은 문학이다. 문학은 누구를 이기는 전략이 아니다.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문학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길가메시든 오디세이아든 문학이 갈등과 전쟁을 표현해도 그것을 통해 타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됨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문학작품이 국제적인 상을 받는 것이 나쁠리야 없겠지만 상을 받아야 훌륭한 문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좋은 문학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거창하게 떠들 수야 없겠지만,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명백하다. 문학이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을 돕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독일, 영국,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문학의 힘이다. 독일의 경우 괴테, 토마스 만, 베어톨트 브레히트 같은 소설가나 시인들이 없었다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같은 평론가가 없었다면 독일인들이 과연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오늘날과 같은 반성적 성찰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독일문학이 독일인들을 오늘날처럼 만들었다고.
1980년대 중반 한국은행 직원 신분으로 서독 연방은행에 연수를 갔을 때 도이체방크에도 잠시 들렀는데, 오늘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그 은행에서 소설가와 시인을 자문역으로 위촉하여 경영에 자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오늘날까지 자신들의 부모가 저지른 참혹한 과오를 있는 그대로 전시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런 철저한 반성적 성찰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번 휴가 중 베를린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역시 작센하우젠의 강제수용소를 찾아가 본 것이었다.
내가 8년간 서강대 MBA 과정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동안, 특히 인간을 한낱 자원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적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인사조직과 리더십을 가르치는 동안 내 강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이혜섭 선생은 2011년 학기 내내 계단강의실 오른편 2시 방향 맨 위쪽 끄트머리에 늘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유난히 하얀 피부와 큰 눈으로 내 강의를 들었다.
최동석 교수님. 서강대 mba제자 이혜섭입니다. 이번에 문학사상 8월호에 새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은 어쩌면 교수님이 늘 고민하시는 지점과도 통해있는 듯하여 (제 맘대로 막 생각) 꼭 교수님께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선물을 가장한 독서 강요?)
내가 자신의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 제자의 뜻을 내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래 이토록 부패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소설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장로교식 아침식사"는 부드럽지만 아주 아프게 표현하고 있다. 읽고 나니 짜하이와 오빠의 다음 소식이 기다려진다.
이혜섭 선생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는 소설가가 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