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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Apr 29. 2019

성취예측모형 워크숍의 마지막 시간에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고뇌(苦惱)를 낳는 행복이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고뇌다.


지난 주말, 2019-04-27(토) 네 번의 워크숍을 끝내고 난 느낌은 늘 그렇듯이 힘들다는 것이다. 우선 육체적으로 주말 토요일에 5시간을 내리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은 대충 열 번째인데, 아마 이것으로 기초과정 워크숍은 여기서 끝내려고 한다. 이제 더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워크숍을 끝내면서 나는 항상 '사랑'으로 끝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진단하는 행위는 그 결과를 타인에게 피드백하는 기술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는 독일의 위대한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ich-Ranicki, 1920~2013)를 만난 이후, 그가 정리한 사랑의 개념에 푹 빠져 있었다. 지금까지 사랑에 대하여 이것보다 더 좋은 정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Mein Leben』에서 이렇게 썼다.     


“Liebe nennen wir jenes extreme Gefühl, das von der Zuneigung zur Leidenschaft führt und von der Leidenschaft zur Abhängigkeit; es versetzt das Indiviuum in einen rauschhaften Zustand, der zeitweise die Zurechnungsfähigkeit des Betroffenen, des Getroffenen einzuschränken vermag: Ein Glück ist es, das Leiden bereitet, und ein Leiden, das den Menschen beglückt.” (Marcel Reich-Ranicki, Mein Leben, dtv 1999, S. 139)     


내가 이 자서전을 읽으면서 이 문장에 당도했을 때의 전율을 아직 잊을 수 없다. 당시 이 문장을 아내에게도 말해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후 번역자들이 어떻게 번역했는지 알고 싶어서 번역본을 사서 읽었다. 그냥저냥 뜻은 전달되게 번역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한 번역이었다.     


두 가지 번역에 대하여


“호감을 열정으로, 열정을 종속으로 변화시키는 극단적인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는 한 개인을 도취 상태로 몰입시키면서 일시적으로 당사자, 즉 사랑에 빠진 자의 책임능력을 제한한다; 사랑은 아픔을 낳는 행복이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아픔이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정인수 서유정 옮김, 『사로잡힌 영혼』, 빗살무늬 2002, 123쪽)     


“호감을 열정으로 바꾸고 열정을 종속으로 끌고 가는 극단의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며, 그 사랑은 한 사람을 도취 상태에 빠트려 그의 판단력을 잠시 흐리게 하면서도 고통을 안겨주는 행복이자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고통이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이기숙 옮김, 『나의 인생』, 문학동네 2014, 123쪽)     


나의 번역은


어느 번역이 월등히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인데, 라이히라니츠키가 의도했던 사랑의 정의를 한 문장으로 나는 이렇게 번역하고 싶다.     


“호감을 열정으로 바꾸고 열정을 애착으로 변화시키는 극단적인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며, 그 사랑의 감정은 당사자들을 도취 상태에 빠지게 하여 때로는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결국 사랑이란 고뇌를 낳는 행복이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고뇌다.”     


독일어의 Abhängigkeit는 종속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사랑의 감정이 당사자를 종속시킨다는 뉘앙스를 갖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종속'보다는 '애착'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이 느낀다. 나아가 Leiden을 고뇌(苦惱)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나아 보인다. 예를 들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원제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인데 일본 사람들이 Leiden을 '슬픔'으로 번역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쓰고 있지만, 소설 내용을 보면 슬픔이라기보다는 고뇌가 훨씬 더 적확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Leiden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린 것인데, 아픔, 고통, 슬픔과 같은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뇌라는 의미가 훨씬 더 나아 보인다. 결국 사랑이란 고뇌를 낳는 행복이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고뇌라는 의미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고뇌가 없는 사랑이란 공허한 것이다. 인간이 공허해지면 요즘처럼 마약파티에 취하여 쾌락에 빠지고 만다. 그것은 섹스에 굶주린 자들의 삐뚤어진 범죄행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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