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송현정 기자의 인터뷰에 대하여
KBS 송현정 기자의 『인터뷰』를 보고
나는 TV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누가 TV에서 유명한 사람인지 잘 모른다. 페북을 보다가 송현정 기자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가 많아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알아봤다.
1시간 반 정도의 인터뷰를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언론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대체로 유능하고 언론의 사명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는 것처럼 말한다. 선발할 때 유능한 인재들이라고 판단했으니까 입사를 했을 거고, 언론인의 사명을 머리로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입사 후에 발생한다. 기자들은 경력을 쌓아가면서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기자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기업에서 실무를 할 때 언론사 기자들에게 시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물론 가판이 있을 때였으니까. 지금은 조금 나아졌으려나 싶다가도 언론인들을 만나보면 별반 달라진 것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기자들을 만났을 때 받는 인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자들은 전문성이 없고 무식하다는 점이다. 뭔 얘기를 하면 모든 것을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다. 뉴욕, 런던, 파리 특파원을 갔다 온 기자들도 그 나라가 어찌 움직이는지 내막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과 얄팍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기자들이라면 일단 그 앞에서 껌뻑 죽는시늉을 하니까 아마도 세상이 그렇게 쉽게 보이는 모양이다.
둘째, 기자들은 거지근성이 있다는 점이다. 기자들을 만나 그들이 밥값을 내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내가 기업에 있으니까 으레 내가 내는 것으로 알고 나를 만나자고 했을 것이다. 골프를 쳐도 그들은 절대로 돈을 쓰지 않는다. 돈을 안 내는 것까지는 좋다만, 꼭 내기골프를 쳐줘야 한다. 적당히 잃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미안해서라도 한 번쯤 내겠다는 빈말이라도 할 법 한데, 절대로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그랬다. 나중에 알았는데, 언론사 급여가 그렇게 짠지 몰랐다.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셋째, 기자들은 하루살이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루 뉴스 마감하면 그날은 일단 끝이고, 내일은 내일 기사거리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5년 후, 10년 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시대정신을 깊이 고민하는 기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거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전략에 대해 고민하는 기자를 보고 싶다.
기자에 대한 좋지 않은 내 선입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송현정 기자의 질문 역시 그렇다. 송 기자는 토론자가 아니라 인터뷰어(interviewer)로 나섰으면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인터뷰를 하는 것이지 토론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정체성, 즉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송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서 1년에 한 번 치르는 저 소중한 인터뷰를 지금 당장의 문제에 집중해서 토론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통령과 시청자 앞에서 자신이 뭔가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역력히 보인다. 심지어 인터뷰 중에 대통령을 가르치려는 포지션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니 시청자들에게 야단을 들어먹는 것이다.
인터뷰어(interviewer)는 인터뷰를 하는 것이지 자신의 지식을 뽐내거나 인터뷰이(interviewee)와 토론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가 자신의 생각을 맘껏 표현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송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서 진짜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해야 했다. 그런데,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조국 민정수석 거취, 인사청문 절차, 지난달 경제성장률 –0.3%, 일자리 문제, 삼성전자와 이재용, 박근혜 사면, 한일관계의 일왕 방문 등의 좁쌀 같은 이슈들을 듣느라 1시간 반을 허비했다. 나는 뉴스를 보지 않아도 바람결에 이리저리 들어서 다 알고 있는 얘기다. 이런 것은 당사자나 장차관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들이다.
문제의 핵심은 인터뷰를 위한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기자들을 왜 하루살이처럼 보느냐 하면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이런 자잘한 이슈들을 물어보다니.... 1년에 한 번 하는 대통령 인터뷰의 의제들이 잘못 설정되었다는 말이다. 5만 원짜리, 1만 원짜리를 물어야지, 천 원짜리, 백 원짜리를 물어보면 어떻게 하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 부족하면 아젠다 세팅이 잘 안 된다. 아젠다 자체를 설정할 줄 모르니 아젠다를 발굴했어도 그 우선순위(priority)를 정할만한 실력이 안 되는 것이다. 왜 국가기간방송인 KBS의 시청률과 신뢰도가 상업방송인 jtbc에 밀리고 있는지 알겠는가? KBS뉴스는 아젠다 세팅이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인터뷰어였다면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우선, 대통령으로서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이슈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대통령은 외교, 정치 등 굵직한 아젠다를 제시할 것이다. 그로부터 사법 농단과 사법제도 등과 같은 최근의 이슈들을 끌어내어 답변을 들은 다음 아래와 같은 이슈들에 질문할 것이다.
첫째,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는 선거제도,
둘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직도 아이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는 교육제도와 평생교육의 획기적 개선,
셋째, 노인들을 쓰레기 줍도록 거리로 내모는 노인빈곤과 불평등 문제,
넷째,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언론상황의 개선,
다섯째, 재벌 횡포와 중소기업 이슈,
여섯째, 점증하고 있는 다문화가정과 이중언어 사용 활성화 이슈,
일곱째, 성소수자 차별 문제,
여덟째,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는 지방분권화 정책,
아홉째, 종교의 부패상황과 투명한 재정관리, 남녀평등, 청년백수와 저출산 등등...
물론 이런 관점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하지만, 철학에 관한 질문을 해야지 일자리 전광판을 오늘 보았느냐는 질문을 하면 어떻하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검증하는 자리에서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쪽팔리는 일이다. 시중에 떠도는 얘기를 여과없이 들이대는 것이 기자정신인가? 문재인을 독재자라고? 박근혜를 사면하라고? 이런 걸 질문이라고 하나? 질문의 수준이 너무 저질이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년 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왔던 국정운영의 기저와 그 기본철학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1시간 반을 듣고 나서 나는 허탈해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앞에 놓고 너무나 시시콜콜한 문제들을 가지고 숫자까지 들먹이면서 얘기하는 게 얼마나 유치한가.
우리나라 기자들은 대부분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시대를 꿰뚫어보는 날카롭고 비판적인 철학적 사유를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런 사유의 중요성을 가르치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언론학자들이 이런 철학적 사고력을 가르칠 수 있겠나, 싶다.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갖고 기자가 되었는데, 그 조직에 들어가서 몇 년 경력이 쌓이면 멍청해진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상황을 고쳐야 할까?
송현정 기자의 이번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언론인들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확고히 굳어지게 되었다.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