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동석 May 13. 2019

김덕영 교수의 조국 교수 비판을 이해하지만...

학문의 깊이와 그 격차에 대하여

김덕영 교수와 조국 교수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우선 한국일보의 김덕영 교수 인터뷰를 읽어보자 이 링크를 먼저 읽어 보시길....(사회학계 '아싸' 김덕영 "교수가 공부를 해야지, 왜 정치를 하나요?")


1980년대 한국은행 직원 신분으로 서독 연방은행에 몇 달 연수를 다녀왔다. 도중에 서독 연방은행의 도움으로 남부 독일 프린(Prien am Chiemsee)이라는 휴양지에서 독일어 코스를 다녔다. 같은 코스에 다니던 마모루라는 일본인 유학생을 만났다. 그는 동경대 고고인류학과 학생이었는데 독일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기 위해 독일어를 배우러 왔다. 티롤(Tirol) 지방을 여행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져 인스브루크(Innsbruck)와 그 주변지역을 함께 돌아다녔다.      


그는 여행 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말로 자신의 지도교수가 일본 고고학은 독일 고고학에 비해 50년이나 뒤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유학생 신분으로 독일 경영학을 공부하면서부터 그가 한 말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귀국 후, 경영실무에 종사하면서 한국 경영학의 수준을 평가하자면, 독일 경영학은 고사하고 일본 경영학에도 50년이나 뒤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페친 박상익 교수의 소개글을 읽고서야 한국일보의 김덕영 교수(독일 카셀대학교) 인터뷰 기사를 알았다. 기사를 읽는 중에 다음의 글귀에서 멈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론 연구에 김 교수는 왜 생을 건 걸까. “한국 사회학의 이론적 틀을 만들기 위해서”란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사회학은 패러다임이나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 번잡한 통계와 설문조사만으로 채우는 ‘테크닉 학문’으로 전락했다. 그는 “올해가 3·1 운동, 임시정부 100주년이라고 떠들썩했지만 제대로 된 연구서가 나온 게 있느냐”며 “이론과 기초를 다지지 않는 한 학문은 깊어질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사회학자 김덕영 교수


김덕영 교수의 이 말은 처절하리만큼 진실하다. 나는 더 이상 기사를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한참 동안 창밖을 내다봤다. 보이는 것은 효성이 짓고 있는 주상복합 40층짜리 콘크리트 더미다. 이 자리는 원래 시공자로 선정된 삼성물산이 재건축조합을 끼고 상인들을 내쫓으면서 용산참사가 났던 바로 그곳이다. 삼성이나 효성이나 그놈이 그놈이다. 빤히 보이던 남일당 건물도 사라졌다. 이제 내 방에서 용산역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남산 타워와 한강 조망을 가리지 않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한다. 제대로 된 사회학자들이 여럿 있었다면, 용산참사는 일어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사회학이 50년은 뒤졌을 것이다.     


어디 사회학만 그런가. 모든 정신학문(Geisteswissenschaft)에서 패러다임이나 근본적 관점과 이론적 틀을 제시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대학교수들이 실증연구에 종사하는 테크니션으로 전락했다. 독일 대학은 박사논문에서도 실증연구는 별로 쳐주지 않는다.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대학에 유학해서 뼈를 깎으며 진지하게 공부한 사람들의 마음을 나는 안다. 진실을 알고 나면 자유를 얻는 게 아니라 더 비참해진다. 조선 말기에 사대부들이 저질렀던 역사적 진실을 알고 나면 마음이 더 비참해지는 것과 유사하다.      


독일의 사회 시스템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50년의 격차가 아니라 100년쯤의 격차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00년 전에 이미 막스 베버(Max Weber) 같은 위대한 학자가 나타났다. 관료제의 조직이론을 생각해낸 사람이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가조직운영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조직설계방안을 제안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새로운 독일은 나치즘에 부역했던 자들을 처벌하고(물론 지금까지 발견되는 대로 처벌하고 있다) 그 시대와 결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히틀러 이후 독일 사회학, 경영학, 법학 등 모든 학문분과와 독일 사회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스템적 변화와 발전을 이룩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명령과 통제의 시스템이 아직도 계속 활용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억압과 착취가 만연한 것은 일제의 착취를 위한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 대학교수들이 현실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학자들의 새로운 이론이 사회 현실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김덕영 교수 덕분에 막스 베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한국인이 이런 수준의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꾸준히 학문적 업적을 내고 있다.


여기서 내 경험을 잠시 얘기해야겠다. 나는 유학 중 지도교수가 진행하는 엑스쿠어지온(Exkursion)에 몇 차례 다녀왔다. 한 번은 함부르크에 본사가 있는 오토 베어잔트(OTTO Versand)라는 회사를 둘러보고 경영진과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내가 놀란 것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내용이 회사의 경영실무에서도 거의 그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경영학이 발전하는 것만큼 기업경영실무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도교수는 지역 주변의 몇몇 중소기업들을 자문해주고 있었다. 1980년대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인사조직을 전공한 경영학/행정학 교수들 중에 조직설계를 위한 직무분석(job analysis)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교수가 몇 명이나 될까? 추측컨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기업들은 그냥 운이 좋아서, 그냥 적당히 얼버무려서 된 게 아니다. 우리나라 경영학/행정학 교수들의 수준을 내가 잘 알고 있다. 어디 사외이사 한 자리 없나, 기웃거리는 이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니체가 말했다던가. 철학 교수들은 많은데, 철학자는 없다고. 내 말이 그 말이다. 경영학 교수들은 수두룩 닥상인데, 경영학자는 없다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한국일보 기자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김 교수는 연구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정치권에 기웃대는 ‘폴리페서’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잠시 자리를 옮긴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를 거론했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덕목으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의 균형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조국 수석은 지금 자신의 정치 행위에 얼마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뜨거운 가슴만 앞서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학자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따지지 않은 채 해야 한다는 당위만 앞세워 정치 영역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고언이었다. 김 교수는 교수들이 정치권에 진출했다가 학교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서도 “외국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인으로 성장하여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독일 사회의 내면을 진실로 들여다본다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독일 기업들의 경영관행과 독일 경영학의 학문적 깊이를 이해하고 우리의 현실을 알고 나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사회학도, 경영학도 그럴진대 법학이라고 나을 리가 있겠는가? 김덕영 교수의 충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조국 교수 같은 사람이 더 노력해서 법학의 수준을 끌어올려야지 왜 청와대에 가서 정치를 하느냐는 충고일 것이다.      


이제 조국 교수 얘기를 해보자. 진실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한국의 현실을 좀 더 깊이 체험하게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현실에 참여하여 고쳐야만 하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눈에 들어온다. 고칠 것이 보이는, 배운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낡을 대로 낡은 헌법과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고,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현실에서 당장이라도 사법제도의 낙후성을 포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누군가 이것을 맡아서 해야 하는데, 법학자 중에서 사심 없이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 사법농단과 사법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법학자들이 들고일어나야 한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어 봐야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지금은 조국 교수가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가끔, 각 분야에서 독일 대학교수들과 맘 놓고 학문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한국 교수들이 몇이나 될까,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한국 대학교수들이 학문적 깊이는 고사하고 표절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김덕영 교수의 비판에 공감하면서도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비참해진다. 한국 사회에 절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