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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an 22. 2021

〈사람 보는 안목〉을 기르자(3)


이 시리즈 글을 읽어온 분들은 이미 이해했겠지만, 정치인을 선출할 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과학적인 진단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합리적 사고력을 갖춘 사람들의 <사람 보는 안목>(앞으로는 그냥 〈사보안〉이라고 하자)은 과거의 전통적인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정치판을 보면서 늘 안타깝게 생각했다. 저렇게 무능한 사람을 뽑으면 안 되는데,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을 떡하니 뽑아 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인재선발에 실패하여 국정농단, 사법농단이라는 비극적 사건도 겪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인사실패가 한둘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인재를 잘못 선택하는지 나는 그 원인을 찾아야 했다. 〈사보안〉이 문제라는 것도 알았고, 그것은 우리 민족의 심연에 각인된 〈사보안〉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엉뚱한 사람을 선택해 놓고 후회하기를 반복해왔다. 물론 잘못된 선거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들의 원인도 있었지만, 〈사보안〉만 제대로 갖추었다면 비극적인 사건에 덜 시달렸을 것이다.     


나는 인사조직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한국인의 〈사보안〉에 비과학적인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 가지다.     


첫째, 전통적인 샤머니즘적 관점이다.      

이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은 관상, 주역, 사주명리, 풍수지리와 같은 전통이 우랄알타이 계통의 샤머니즘과 결합하어 미래의 운명을 예측하려 한다.      


가족의 무병장수, 사업번창, 입시합격 등을 백일기도를 시작하거나 사찰의 기왓장에다 소원을 쓰는 행위들이 〈사보안〉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타인에게도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태어난 장소와 시간 등을 가지고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친다.      


이 위대한 과학의 시대에 심지어 자녀결혼을 위해서는 궁합을 보는 강남아줌마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지극히 이기적 욕망의 분출을 억제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미신적 행태다.     


이런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도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사이비신흥종교에 빠진 사람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사고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둘째, 유교적인 계급주의적 관점이다.      

이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계급적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는 따로 있다는 식의 관점에서 사람을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힌 경우에는 어떤 합리적 설명도 소용이 없다.      


그래도 이런 〈사보안〉은 샤머니즘적 〈사보안〉에서 조금 더 진전된 것은 분명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평가기준이다. 체형(體形), 언변(言辯), 필적(筆跡), 문리(文理)로 사람을 진단한다.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은 장래의 성취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잘 생긴 사람이 일을 더 잘하는가?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하는가? 정말 그런지 조사연구를 해보았는가?     


예를 들어보자. 경기고, 서울대,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 컬럼비아대 조교수, 서울대 교수, 서울대 총장을 지냈고 국무총리까지 했다면 대단히 유능해서 꽤나 큰 사회적 공적이 있었을 것이다. 정운찬에 관한 얘기다.      


나는 그의 생애 내내 출세의 욕망에 불타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어떤 사회적 성취를 이룩했는지 전혀 모른다. 2017년 19대 대선에 출마선언을 했었다. 출세기회를 간보다 엿보다를 반복하는 기회주의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시절 국무총리로 임용되었다. 국회 답변에서 731부대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항일 독립군 부대가 아니냐고 얼버무렸다. 어처구니없는 답변이었다. 일말의 역사의식도 없는 인간임을 증명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오다가다 들어서라도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자기인식과 역사의식이 결핍되어, 그 어떤 사회적 성취도 기대할 수 없다.      


오래 전 어느 날 그의 제자인 젊은 경제학자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정운찬에 대한 칭찬이 입에 마르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정운찬이 사회적으로 성취한 공적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던 모양이다. 제자인 자신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일류대학의 교수로 자리 잡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더 혈연, 학연, 지연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     


슬프게도, 우리나라엔 높은 관직에 있었으면서도 아무 것도 성취한 것이 없는 허망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유교적 계급주의적 〈사보안〉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했기를 바란다. 이런 식으로 뽑으면 결국 시민들이 고통을 당한다.     


셋째, 상업적인 경쟁주의 관점이다.     

이 〈사보안〉은 어찌 되었든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높은 관직을 차지한 사람은 정치를 해도 잘 할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장차관급의 높은 관직에까지 출세했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학벌이 좋은 사람은 학창시절 시험성적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기 때문에 정치에서도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험성적과 정치는 전혀 다른 영역인데도 말이다. 골프를 잘 친다고 축구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상업적인 경쟁주의적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은 인사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특히 시험성적으로 선발하고 출세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많은 사례를 들지 않겠다. 이회창의 경우만 설명하고 끝내겠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 판사를 거쳐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그 역시 출세욕에 불타 대통령에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당시 정치적 이념을 떠나 도대체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회창은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에게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다. 고졸출신 노무현에게 패배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선거과정에서 불법적인 선거자금이 오갔다는 얘기가 돌았고, 이듬해 한나라당은 차떼기정당이었음이 밝혀지는 바람에 나라 전체가 뒤집어졌다. 그럼에도 2007년 17대 대선에 또 도전했고 비참하게 패배했다.      


법률가로서는 유능했을지 모르겠으나 정치판에 나온 후 이렇다 할 사회적 성취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성취는커녕 이회창이 속한 한나라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총풍사건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정치판을 개판으로 만들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이회창을 지지했을까? 상업적인 경쟁주의적 〈사보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경쟁을 뚫고 아무도 쉽게 차지할 수 없는 고위관직을 두루 거쳤기 때문에 그에게 능력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를 지지했다. 고위관직에 있으면서 시민들을 위해 어떤 사회적 성취를 이루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이회창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관리해온 것 말고는 어떤 성취도 없었다. 오히려 사회에 해악을 끼쳤다. 이낙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친 김에 예를 하나만 더 들어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의 매력도에 따라 좌우된다. 여기에 상업적 선전·선동의 기술이 작용한다. 출세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찬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관심을 끌려고 눈썹문신을 한다든지 머리염색을 한다든지, 심지어 성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미디어의 '아내의 맛' 같은 연예 프로에 나가 마케팅 기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선전·선동의 기술은 오히려 역량진단 전문가들에게는 역효과를 낸다. 왜냐? 이런 얄팍한 기술은 사회적 성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고, 인간 내면의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은 그런 포장지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내면의 속성이지, 그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런 상업적 경쟁주의적 〈사보안〉은 사람을 잘못 판단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보안〉이어야 하는가? 성취지향적 〈사보안〉이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정치인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시민들이 살아온 역사적 배경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시적 지평(diachronic horizon)이 열려 있어야 하며, 동시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시적 지평(synchronic horizon) 또한 열려 있어야 한다. 이 두 지평이 융합함으로써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정치인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과거에도 성취해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직접 경험이 없더라도 그것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최소한 있어야 한다. 과거에 노력한 흔적도 없던 사람이 앞으로 잘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누구라도 계획은 세울 수 있고 말도 번지르르하게 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과거를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정치인 역량진단을 위해 과거의 흔적을 살피다보면 반드시 그 정치인이 참여했던 여러 사건에 마주치게 된다. 큰 사건일수록 좋다. 그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어떤 의도로, 어떤 행동을 해서, 어떤 결과를 산출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역량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이것을 도구적 역량군(instrumental competencies)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분석적 사고력(Analytical Thinking, AT), 개념적 사고력(Conceptual Thinking, CT), 영재성(Giftedness, GIF)이라는 세 개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둘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추상화 역량군(abstraction competencies)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창의성(Creativity, CRE), 미래지향성(Forward Looking, FL), 학습능력(Learning Capability, LC)이라는 세 개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셋째,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완성하여 제공할 수 있는 끈질긴 의지와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을 목적지향적 역량군(purpose-oriented competencies)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 대인영향력(impact & influence, IMP), 정직성실성(integrity, ING)이라는 세 개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성취예측모형〉을 활용하는 〈사보안〉을 가져야 한다     

정치인으로 대성하려면, 이 세 가지 역량군, 즉 아홉 가지 역량요소(competency factor)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전 글에서도 누누이 강조했지만, 이러한 역량요소들은, 타고나는 신체적 특성과 비슷해서 후천적으로 노력해도 잘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어려서부터 이런 재능을 타고났는지 스스로 성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단지 출세욕만으로 정치에 나서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을 괴롭히는 꼴이 된다. 이것은 임명직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 중에 정치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주 많아 우리 현대사에 비극적 사태가 벌어졌다. 이 글에서 예를 든 몇몇 사람들은 진작 정치에서 손을 뗐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본인도, 주변사람들도, 시민들도 괴로움을 당한다.      



(후기)     


내가 평생 연구하고 가르치고 실무에서 활용했던 역량진단모형, 즉 〈성취예측모형〉을 지난 몇 년 간 <사람숲협동조합>이 주최하는 Sunday School(주일학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해왔다. 이 내용은 현재 편집 중이며 늦어도 금년 상반기 중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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