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기독교인, Christian)이라는 개념에 대하여(2)]
[이 글은 나의 페이스북에다 2018년 11월 30일 쓴 두 번째 글입니다]
앞에서 "Ich bin Christ."라는 독일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교회에 꼬박꼬박 나가 예배와 신앙고백을 드리고, 십일조와 헌금을 잘 내고, 성가대를 하거나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이른바 '교회오빠'로서의 역할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잘 수행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독일친구가 교회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대화 중에 느닷없이 "내가 곧 그리스도, 예수, 메시아"라는 것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아니라 진실로 한 말이었다. 이 말은 예수처럼 사는 사람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온갖 의례와 이벤트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예수처럼 또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역사와 신학의 역사를 훑어보면, 교리가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무수히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 시대의 필요'라는 말은 기독교가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그 시대에 맞도록 이론을 제작하거나 또는 조작해 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론은 언제나 그 당시의 기득권층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다. 교리나 법규가 그것을 주무르는 기득권층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지는 슬픈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고대로마시대 이후 교부라고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성서의 내용을 플라톤의 이원론 철학에 기초하여 신국론, 삼위일체론, 원죄론, 유아세례론 등과 같은 교리를 만들어냈다. 누구든지 이것을 믿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오로지 신의 은총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정통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이 되는 것이었다. 기독교 공동체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이론들은 천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이 교리가 만들어진 이후의 유럽을 암흑의 중세시대라고 부른다. 이 교리들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그의 "고백록"은 위대한 인류문화유산이지만, 그의 개인적 체험이 교리로 굳어지는 바람에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폭력적인 것이었다.
기독교 내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론들이 매우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는 이슬람세계의 발전된 모습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접한 후 기존의 이론을 조금 바꾸었다. 이성에 의해서도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합리성과 개별성(individuality)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억눌리고 천대받던 개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문예혁명이 시작되었고, 과학혁명, 종교혁명, 시민혁명, 산업혁명으로 혁명의 역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인류문명은 폭발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뒤늦게나마 교회의 이론이 바뀌어 왔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교리와 학문은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이론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삶의 실천적 이론을 바꾸면 된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우리 각자가 "Ich bin Christ."(이히 빈 크리스트의 정신), 즉 "내가 곧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구세주"로 살아갈 수 있는 이론을 만들어 실천하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등 수많은 학자들이 제작하거나 조작한 이론을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기득권층의 프레임에 들어앉아 있어야 구원받는 게 아니다. 썩어빠진 한국형 기독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주의**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력이 현저히 부족한 보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우리나라에 아주 많다. 나는 이들을 기독교 골수분자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댓글은 정중히 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