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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Oct 02. 2015

사진으로 보는 영국(2)

비합리적 제도와 합리적 정신

사진으로 보는 영국(2)

비합리적 제도와 합리적 정신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형제는 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당당한 사회인으로 키워야 하는 부모로서 교육과 그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여행 중에도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우리 아이들은 독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딸은 초등학교 4년을 마치고(독일 초등학교는 4년 과정) 김나지움을 잠시 다니다 귀국하여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5학년으로 전학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본 후 딸이 울상을 지으면서 한 말이 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인데, 왜 틀린 것이 무엇인지를 맞추라고 하느냐는 반문이었다. 그리고 왜 여러 개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느냐고 울상을 지었다. 독일학교에서는 사지선다형이나 "다음 중 틀린 것은?"와 같은 문제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이런 문제들이 나오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험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형제가 여행 중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교육에 관한 철학적 사유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교육은 학생들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양성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런 관점은 군국주의적 교육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다, 인간은 뭔가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자원(resource)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찾게 하거나 지식의 양을 넓혀주는 행위가 아니다. 세상에는 정답이라는 것도 거의 없으며 지식도 백과사전이나 도서관에서, 요즘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교육을 경험해 보면, 학생을 인재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도 않고, 정답을 찾아내도록 요구하지도 않고,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 넣어 달달 외우도록 닦달하지도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교육은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행위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의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재능은 소중하고 존중되어야 하며 그것이 학교를 통해 발견되고 발휘되도록 장려되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각자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휘하여 자신의 삶을 타인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까지의 교육방식과 제도, 그리고 교육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교사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하도록 도와야 하는 부모로서 한국의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어려서부터 시험 점수 경쟁에 내몰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다. 아이들을 서로 경쟁시켜서 장차 뭘 어쩌자는 것인가, 도대체... 그러나 교육계와 교육학자들에게는 이런 성찰과 반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에 왔으니 영국얘기를 조금 해보자. 영국 의회는 상원에 해당하는 House of Lords라는 게 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세비를 받으며 일한다. 그러나 그들은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게 아니라 세습된다. 이 문명화되고 민주화된 세상에서 이게 말이 되는가? 물론 지금 이것을 개혁하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논의만 무성하지 아직 똑 부러진 결론이나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장 민주화되어 있는 나라라는 영국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제도가 아직도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제도를 넘어서는 합리성(매사를 이치에 맞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신) 때문일 것이다. 비합리적인 제도이긴 하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치에 맞는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끊임없이 합리적인 해결책을 위해 대화하고 토론한다. 합리적인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합리적 정신이다. 합리적 정신이란 이치에 맞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즉 정(These)과 반(Antithese)의 상호작용을 통해 합(Synthese)이라는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정신을 말한다. 박근혜 누님과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해본 사람이 있는가?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이라는 합리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비합리적인 정신 때문에 나라가 이 꼴로 변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매우 비합리적인 교육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합리적인 대화나 토론이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하는 선에서 그치고 말기 때문에 입시제도만 누더기처럼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지금 비합리적 정신이 제도를 더욱 비합리적으로 만들고 그것이 다시 비합리적 정신을 키우는 악순환 고리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대 민주주의의 상징 웨스트민스터, 의사당과 빅벤
런던 아이(London Eye)
런던 아이에서 바라본 템즈강
런던 아이에서 바라본 템즈 강
빅토리아 임뱅크먼트에서 바라본 빅벤과 영국의사당
영국의사당 옆에 붙은 커다란 종탑. 빅 벤
영국의사당 남쪽에 붙어 있는 빅토리아 타워 가든
런던 아이
빅토리아 타워 가든에서 바라본 런던 아이
빅토리아 임뱅크먼트에서 바라본 런던 아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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