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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Oct 10. 2015

영국에서의 결혼(2)

나는 누구인가를 표현하는 영국인들

영국에서의 결혼(2)

나는 누구인가를 표현하는 영국인들



삶이란 진짜 배움의 연속이다. 이번 딸의 결혼식을 위해 영국에 와서 느낀 것은, 나라마다 정신문화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영국에서 살고 있는 딸은 영국인 남자친구를 런던에 있는 로스쿨의 주말과정을 다니다가 만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저 서로 함께 공부하는 수준이었다가 점점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유럽인들에게 프러포즈는 남자친구가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면, 결혼식은 온전히 신부의 것이 된다. 신부가 결혼식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면 부모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해봤자 통하지도 않는다. 신부의 결혼식을 위해 친척들, 친구들, 회사 동료들은 그저 조연으로서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혼식이다. 어디서 어떤 콘셉트로 결혼식을 할 것인지는 오로지 신부의 결정에 따른다.      


결혼 준비 과정을 대강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결혼 풍습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딸은 붕어빵 찍어내듯 하는 결혼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성을 드러내는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너의 결혼식은 무슨 콘셉이냐’고 딸에게 물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성장했고 독일초등학교와 한국 중고등학교를 다닌 후 영국 대학, 더 정확히는 스코틀랜드의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계 직장에서 일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제 영국인과 결혼하는 내가 과연 누구인지를 결혼식에서 표현하는 것이 콘셉이라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가장 알맞은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신랑과 둘이서 함께 안식년 휴가를 내어 6개월간 세계여행을 할 것인가(신부는 금융기관에서, 신랑은 컨설팅회사에서 일하는 데 안식년 휴가를 3~6개월 정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아니면 그동안 도움을 준 가까운 분들을 초대해서 자신만의 결혼식을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의례와 의식을 아주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사람이어서 결혼식보다는 세계여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엄마의 말을 듣고 결혼식을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내가 이번에 결혼식을 위해 영국에 와서 아내와 딸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니, 여자들은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과 환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생활의 상당 부분을 그 웨딩드레스의 추억과 로망을 되새기면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영국인 시어머니도, 며느리에게 입었던 예쁜 웨딩드레스와 베일을 앞으로 태어날 딸이 결혼할 때까지 잘 간직하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남자들은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지만 가정을 꾸리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오히려 훨씬 더 크다.     


세계여행보다는 결혼식을 하기로 한 후, 어디서 할 것인지를 마음에 두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북부의 여러 고성이나 펜션을 찾아보았다고 한다.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비교적 시댁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에 있는 앰벌리 캐슬로 정한 것이었다.      


당초에는 이 고성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교회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피로연을 성의 안뜰에서 하려고 목사와 상담을 했단다. 그러자 목사가 헬리콥터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돈 많은 부자들과 귀족들이 헬기를 타고 와서 결혼식을 하기도 한다는 등 결혼식 세일즈를 했단다. 더욱 가관인 것은 노숙자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저녁이 되면 문을 걸어 잠근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영국에도 조용기 목사나 오정현 목사 같은 개념 없는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목사라면 적어도, 아무리 작은 시골교회의 목사라도, 영국 정부가 노숙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이 시대의 모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져야 할 지식인이어야 하지 않은가? 딸은 결혼예식으로 돈을 벌려고 세일즈를 하는 이런 사이비 목사에게 주례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역시 내 딸이 자랑스럽다.     


그 목사가 주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 예배당에서의 결혼식은 포기하고, 그 대신 성 안의 야외에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야외 결혼식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딸이 살고 있는 지역 그리니치의 구청 공무원이 진행하는 간단한 결혼식을 다시 치러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갤러리

(이 사진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형님이 찍어준 것)


오후 2시에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들러리와 화동이 성 이층에서 내려오고....
신랑의 큰 누이가 결혼주례를 맡았다.
결혼식 조망
스트링 트리오
부부가 된 직후...  우리말로는 신혼부부라고 하는 데 독일어로는 갓구어낸 부부라는... das frisch gebackene Ehepaar
신부 가족
신랑 가족
신랑 둘째 누이의 14개월 아들
결혼식을 기획하고 총괄 진행한 둘째 누이와 주례를 맡은 큰 누이
신랑의 아버지와 매형들
이렇게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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