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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Oct 10. 2015

영국에서의 결혼(3)

참석자들 모두가 함께 즐기는 잔치

영국에서의 결혼(3)

참석자들 모두가 함께 즐기는 잔치



나는, 딸이 준비한 결혼식에 참석해보니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결혼식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신랑 신부를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초대되지 않는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들러리 및 화동, 케이크 만들기, 짐 나르기, 픽업봉사, 웨딩 기획 및 총괄 진행, 주례, 스피치, 꽃장식과 부케 만들기, 사진 및 비디오 촬영, 간식 사 오기, 웨딩드레스 보조, 버블 만들기, 폐백행사 진행, 스코틀랜드 전통춤인 케일리(ceilidh) 배우기, 신발게임 진행, 점핑샷 사진 찍기 행사 참여, 하객특성에 맞는 개별 맞춤형 저녁식사 제공 등등.      


호텔의 저녁식사 메뉴판에 breakfast라고 찍혀 있길래 이게 오타인 줄 알았더니 wedding breakfast가 결혼 피로연의 뜻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중요한 것은 이 breakfast에는 반드시 신부 아버지의 스피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리 영어로 준비하긴 했지만, 나는 한국어로 하기로 했다. 공식적인 행사인 만큼 영어로 하는 것보다는 한국어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내용을 문장 단위로 아들이 통역하도록 했다. 아들의 역할은 폐백 사회를 보고 내 스피치를 통역하는 것이었다.      


저 높은 데 계신 분(여기서는 박근혜를 지칭)이 외국에 나가서 국가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연설조차, 되지도 않는 외국어로 창피를 떠는 것보다 우리말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품위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자랑질을 하자면 내 스피치를 들은 사람들이 감동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딸의 회사 동료들은 한결같이 그 스피치를 자신들도 실천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아무튼 모든 참석자는 어떤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 아무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은 박수 치고 소리 지르고 추임새를 놓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심지어 웨딩 기획과 총괄은 신랑의 작은 누이가, 주례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큰 누이가 진행했다. 모든 참석자가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결혼식을 즐기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이들은 이 고성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내가 영국식 전통춤 배우기를 마치고 호텔방으로 들어간 것이 거의 새벽 1시쯤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 초대받은 사람들이 신랑 신부가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선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큰 돈은 아니지만 초대된 사람들의 정이 오고 갈 수 있는 아주 좋은 풍습이다.      


하나 더. 이번에 다시 한 번 더 경험한 것이지만, 영국인들은 정말 말이 많다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내가 알아듣든 말든 그들은 하고 싶은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내가 무슨 말인지 잘못 알아듣는 듯하면, 종이에다 써가면서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하긴 세계를 제패했을 때 영국인에겐 무력도 필요했겠지만 언어도 못지않게 필요했을 것이다.     


공식적인 결혼식이 있기 전날, 그러니까 2015년 10월 3일에는 앰벌리 캐슬 가까운 곳에다 작은 코티지(cottage)를 빌려 하룻밤을 자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결혼식 행사를 최종 점검했다. 결혼식 행사를 위한 베이스캠프를 차린 것이다. 아울러 그 곳에서 양가의 친척들이 모여 다시 한 번 서로 인사하고 식사를 함께 했다.     


영국인들의 결혼식은 자신의 형편과 사정에 맞게 치른다고 한다. 교회 또는 구청에서 하거나 공원 잔디밭에서 하거나 그리스의 어느 섬을 빌려서 하거나 어떤 정해진 틀이나 형식이 없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컨베이어 벨트식 결혼을 상상할 수 없다.      


딸은 자신만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영국식에다 한국식을 가미한 퓨전 결혼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앰벌리에서의 결혼식은 내가 지금까지 참석했던 그 어떤 결혼식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스러웠다. 물론 내 딸이 하는 결혼이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결혼해서 33년간 딸과 아들 둘을 낳아 키웠는데,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딸은 스스로 결혼할 만큼 자라더니 이제는 완전히 독립한 것이다. 이렇게 자라는 자식들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아들은, 아니 아들의 여자 친구는 또 어떤 결혼식을 계획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갤러리

(이 사진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형님이 찍어준 것)

예식이 끝나고 2층에서 부케를 던지는..
이렇게 해서 야외행사는 끝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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