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회에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IT버블이 심하던 시절이었는데 벤처창업을 적극 장려했다. 벤처창업은 대부분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벤처기업이 실패하지 않도록 벤처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실리콘밸리를 찾아가고 혁신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잘 안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스타트업을 강조하면서 창업하라고 다그쳤다. 지원도 꽤 해주었지만 창업하면 망한다는 인식만 심어주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혁신을 구호로 삼고 있다.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었다. 이게 마침 미국과 독일에서 추진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industry 4.0)과 맞아떨어지니까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어쩌고 하면서 그것과 연계시켜 보려고 난리다. 건물만 지었을 뿐, 안 될 것이 뻔히 보인다.
독일은 2006년부터 2035년까지의 장기적인 계획 하에서 추진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인가 어느 부처에서 몇 년 내에 몇 조 원을 투자해서 상당한 공장들을 스마트 팩토리로 변화시키겠다는 어마어마한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늘 그렇듯이 우리 정부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다그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망치고 있다.
하려는 의지는 있어 보이는데 왜 안 될까? 왜 창조와 혁신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책을 쓰고 있다.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우리 사회는 명령으로 움직이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멍석을 깔아놓았으니 창조와 혁신을 하시오, 라는 명령이 있을 뿐이다. 이런 명령에 따라 창조와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우리나라 군대가 가장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군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명령이 존재하는 조직은 부패한다. 우리 군대가 갈수록 부패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부의 부패정도가 심한 이유도 상관의 명령에 의해 중요 행정업무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너무나 불합리하기 때문에 창조와 혁신은 꿈을 꿀 수 없다. 지금까지 사회의 문제들을 명령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렇게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어 왔다. 2014.4.16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 가장 불합리한 경우로서 가장 불행한 참사였고 2016년 20대 총선을 위한 새누리당의 공천파동은 최근에 일어난 가장 불합리한 사건이다. 한 마디로 코메디에 해당된다.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태가 새누리당에서 벌어졌다. 오죽했으면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새로운 정치결사체가 나와야 한다고까지 말했겠는가?
명령을 어기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며 실패하면 국물도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벤처니, 창업이니, 스타트업이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 어떤 행위도 불가능하다. 일단 성공하거나 승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쪽박 차는 사회에서 누가 감히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겠는가? 현금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있는 재벌들도 실패할까 봐 투자하지 않는데, 개인이 무슨 수로 창업을 하겠는가?
승리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이기려고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요즘에는 편법으로 창조와 혁신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많이 퍼져 있다고 들었다. 사기꾼들이다. 정부지원금만 먹고 튀는 자들도 꽤 많다. 편법으로라도 일단 승리하면(시험성적에서부터 정권교체까지) 우리가 고민하던 불공정과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선동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편법과 불법을 이번에는 눈감아 주자고 한다. 우선 이기고 봐야 하니까, 대부분 이 선동에 속아 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창조와 혁신이 가능할까?
이런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피비린내 나는 경쟁대열에 끼지 않고 초연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공무원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년에 연금을 받아 최소한 굶주림은 면할 수 있을 없을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창조와 혁신이 가능할까?
명령과 통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대화와 토론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창조와 혁신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명령과 통제가 없는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