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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un 06. 2016

성과연봉제의 본질과 문제점

합의도 없이 강제로 밀어붙이면 후유증이 커진다. 아주 위험한 일이다.


왜 팟캐스트를 선택했는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늘 우리 사회가 승자독식, 약육강식, 지배와 통제, 명령과 복종, 억압과 착취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적인 환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사람 살만한 사회,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 합리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무를 할 때는 일에 매몰되어 그런 생각을 거의 못하고 있다가, 은퇴를 준비하면서 내 인생의 세컨드 스테이지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특히 전공인 경영학의 인사조직 분야를 통해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려면,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책을 출간해봐야 몇 천부도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청춘은 본래 아프다'거나 '아내와 후회스러운 결혼을 했다'거나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책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강의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고, 육체에도 피로가 누적됩니다. 그래서 적어도 수십만 명, 많으면 수백만 명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이제 책의 시대는 가고 위대한 팟캐스트의 시대에 도래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팟캐스트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직접 만들 재간은 없으니까, 당대 최고의 팟캐스트에 빌붙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팟캐스트계를 평정한 김용민 PD와 슈퍼스타 K를 만들어낸 김용범 PD가 내 누님의 아들들입니다. 누님은 일찍 결혼해서 분가하는 바람에 이 조카들이 어렸을 때 어떠했는지는 잘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타고난 특별한 재능들(giftedness)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용민 PD가 쓴 책 <보수를 팝니다>를 보고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창립과정에 합류해서 일 년 간 함께 일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김 PD의 방송제작 능력을 직접 경험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괴물이다, 이렇게 생각했죠. 그 후, 김 PD는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논문을 받아보고 또 한번 놀랬습니다. 그의 내공이 학문적으로도 크게 성숙해졌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건 그가 나와 특수관계인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방송의 내용선별능력과 그 해석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 입장과 지향성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꼼수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정봉주 의원이 이명박의 BBK 의혹을 파헤친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잃었습니다. 2012년 봄 총선, 정 의원을 대신하여 서울 노원갑 선거구에 출마한 김용민 PD를 조선일보는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막말을 했다는 이유로. 기가 막혔습니다. 막말은, 막말을 하게 하는 저간의 콘텍스트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 막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막말을 했다는 사실보다도 막말을 하게 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막말만 편집해서 공격하면 안 됩니다. 정청래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승용 의원이 딴소리를 자주 했기 때문에 '공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인데, 정청래 의원이 그저 막말을 했다고 욕하는 조선일보를 나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조선일보의 행태에 놀아나는 김종인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19대 총선에서 조선일보의 김용민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방어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블로그에다 글을 쓰는 것 밖에 없었죠. 두 편의 간단한 글을 썼습니다. 이때는 한양대학교에서 Honors Program을 위해 영재성(giftedness)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였습니다.

2012.04.05 김용민의 막말: 텍스트와 콘텍스트에 대하여 (2)
2012.04.06 누가 김용민을 비난할 수 있는가_다시 텍스트와 콘텍스트에 대하여 (2)

뭐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본론으로 들어가죠. 심각할 정도로 잘못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바로 잡으려면,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서 올바른 사상과 철학을 전달하고 함께 대화와 토론으로 선악이 분별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래서 김용민 PD에게 연락해서 내 칼럼을 팟캐스트에다 실어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1인 매체로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사람에게는 칼럼을 선별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다는 답변을 들었고, 형식과 내용은 어떻게 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첫 원고를 써서 아이폰으로 녹음했습니다. 녹음에 실패를 반복했죠. 원고를 읽는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아나운서와 성우라는 직업도 장난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 열 번도 더 녹음했을 겁니다. 나는 방송에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시도했으니 신통치 않아도 6월 한 달은 해볼 작정입니다. 반응이 괜찮으면 계속하고... 다음과 같은 몇 사람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 내용이 참 좋다, 앞으로 계속하는 거냐? 
- 내용이 살짝 어렵다. 두 번 들으니까 완전히 이해된다. 
- 칼럼이 너무 길다는 느낌이다. 

첫 칼럼으로 성과연봉제를 택했습니다. 성과연봉제의 본질과 문제점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현 정부의 성과연봉제에 대한 입장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 내용은 아주 복잡합니다. 너무나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헷갈리는 주제입니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계속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고 피드백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방송원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정부가 요즘 공기업에 대해 성과연봉제를 강제하는 바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기업의 근로조건을 변화시키려면 직원의 과반수가 가입된 단체와 협상을 통해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노동법의 기본 정신입니다. 서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합의하라는 취지입니다.     


2, 

그러나 정부의 강행 태도는 법률의 정신을 무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권침해의 소지도 있어 보입니다. 특히 산업은행과 같이 정부가 소유한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성과연봉제를 강제하고 있습니다.(당국ㆍ금융노조, 성과연봉제 동상이몽, 한국일보 2016.05.23)      


2-1. 

권력을 가진 지배층이, 자신들의 뜻을 피지배층에게 강제하는 관행은 조선시대부터 일본강점기를 거쳐, 다시 독재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1세기 이 개명한 시대에도 이런 옳지 못한 관행을 우리 사회는 전혀 걷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정부의 강제하는 행태야말로 큰 문제입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독재적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대 강 사업이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까? 어떤 국가적인 사업을 추진하려면,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대화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3.1. 

이명박 정부 이래 지금까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중대한 국가적 사안을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억압하거나 협박하면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4. 

당사자들이 공감하지 않는 것을 강행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4대 강 사업처럼 반드시 후유증이 생깁니다. 성과연봉제는 4대 강 사업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4대 강 사업은 하천을 파헤치는 토건업자들에게는 큰 이익이 돌아갔지만, 자연생태계는 커다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원상태로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4.1.

성과연봉제도 마찬가집니다. 성과연봉제는 노동자들에게 정신적으로 아주 큰 피해를 입힐 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갈등을 일으키고 활력을 잃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우선 성과연봉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과연봉제는 성과에 따라 연봉을 차별화하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5.1. 

여기에는 두 가지가 포인트입니다. 첫째 성과를 개별적으로 상대 평가한다는 것이고, 둘째 그 평가결과에 따라 보상을 차별화한다는 것입니다.      


6. 

성과를 개별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성과를 개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오늘은 성과 평가에 대해서만 잠시 말씀드리고, 추후에 시간 되는 대로 보상 차별화의 문제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7. 

오늘날, 조직에서 일해 본 사람들은 이미 체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봉투에 풀칠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노동이라면 몰라도, 혼자서 따로 떨어져 일하는 경우란 거의 없습니다.      


8. 

독불장군으로 일하는 사람은 조직문화를 해치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기피의 대상입니다. 누구나 다른 직원들과 협력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상하가 서로 협력해야 하고 좌우가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8.1.

이것은 이미 학문적으로도 결론이 났습니다. 오늘날 현대 경영학은 개별적인 성과가 아니라 팀의 성과 또는 조직 전체의 성과를 높이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9.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서 GE라고 불리는 General Electric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회사는 19세기 말에 토마스 에디슨에 의해 세워진 회사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는 직원들의 성과를 개별적으로 평가하여 서열화했습니다. 서로 경쟁시켜서 동기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성과에 따라 당근과 채찍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성과가 낮은 직원들 중에서 최하위 10%를 퇴출시켰습니다.      


9.1.

잭 웰치는 1980년대부터 그런 규칙을 철저히 지켜오는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 당시는 미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잔인한 제도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었던 면도 있었습니다.      


10. 

어쨌든,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기업들이 대부분 GE의 방식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당근과 채찍으로 성과를 높이는 풍토가 조성되었습니다. 미국은 돈 놓고 돈 먹는 사회로 변했습니다. 드디어 20세기 말에 IT버블이 크게 일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버블이 꺼지면서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10.1. 

그 후유증을 극복할 즈음인 2007년 또다시 금융위기를 겪었습니다. 결국은 당근과 채찍을 숭배하던 월스트리트가 붕괴했습니다. 미국은 이렇게 돈 놓고 돈 먹는 풍토 때문에 완전히 망한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는 이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기업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했고 근본적인 변화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잭 웰치도 자신이 잘못 생각했었다고 반성했습니다.     


11. 

그러면, 지금 GE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몰상식한 성과평가 방법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그동안 '성과연봉제'와 같은 평가방법을 써보니까, 직원들에게 성과를 높이려는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대평가방법이, 하위 10%의 '해고자'를 찾아내는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11.1. 

협력의 정신은 사라지고 직원들 서로가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가의 개념과 방법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크게 반성한 것이죠.      


12. 

어떻게 바꾸었느냐? 모든 직원들이 서로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평가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서로서로 그 아이디어를 더욱 쓸모 있게끔 피드백을 해주도록 했습니다. 모든 업무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서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수시로 피드백을 해주는 것입니다.      


12.1. 

평가의 목표가, 이렇게 초보적인 아이디어를 보다 더 가치 있는 아이디어가 되도록 만드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들이 발굴되기 때문에, 서로서로 주고받은 피드백들을 모은 자료가 생겨났습니다. 이 자료가 곧 그 직원들에 대한 평가 자료로 활용됩니다. 이런 평가제도는, 서로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협력을 장려하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성과평가의 본질에 부합하게 된 것이죠.     


13. 

이렇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겨나자, 상명하복의 문화가 사라졌습니다.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하위 10% 해고자를 골라내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협력하려는 마음가짐이 늘어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게끔 바뀌었습니다. 성과평가제도가 바뀌자 견고했던 계급적인 수직구조가, 상당 수준 수평적인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14. 

관리자의 역할도 그래서 새롭게 규정했습니다. 과거에는, 관리자는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내리고 직원의 성과를 평가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에선 관리자를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보았습니다. 관리자란, ‘팀원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영감을 부여하는 존재’로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GE는 벌써 몇 년째 이런 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0% 해고 룰…첫 도입 GE는 이미 없앴다” 중앙일보 2016.05.13)     


15. 

그렇다고 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도 GE처럼 따라 하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변화를 추진해가는 과정에서 GE에게서 배울 점이 있기 때문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스템을 바꾸면서도 바뀐 시스템이 좋은 것이니까 무조건 적용하라고 직원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골든타임이니 뭐니 하면서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경영자와 모든 직원들이 함께 공감대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배워야 합니다.      


16. 

우리 정부와 공기업 경영자에게 호소합니다. 성과연봉제와 같은 중대한 결정은 강제로 시행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조합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서로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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