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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un 11. 2016

성과연봉제는 엉터리다

성과연봉제가 조직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김용민PD의 심각하면서도 장난끼 어린 표정입니다. 예전에 구글링하다가 찾아낸 것인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정부가 강제하고 있는 '성과연봉제'는 엉터리입니다. 성과연봉제가 조직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김용민 조간브리핑』 토요판(2016-06-11)에 [최동석 칼럼]이 실렸습니다. 성과연봉제의 문제점을 앞으로 조금 더 다룰 예정입니다.     

요즘 『김용민 조간브리핑』을 다운로드하여 차분히 듣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산책할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책을 보다 잠시 쉴 때 팟캐스트 『김용민 조간브리핑』을 쭉 듣습니다. 팟캐스트계를 압도적으로 평정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뉴스는 현장이다] 매일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속에서 뜨거운 주제를 골라내는 이슈 선택능력, 선택된 이슈들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내용을 분석하여 전달하는 능력, 최신자료와 과거 육성자료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자료조사 및 편집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정치 한 건 했어] 김태규 기자(한겨레)가 정치현안의 이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분석적이고도 개념적인 혜안을 들려줍니다.      

[경제의 속살] 이완배 기자(민중의 소리)는 복잡한 경제사건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파헤쳐서 청취자들에게 자본주의적 관점의 위험성을 알리면서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김태규와 이완배는 『김용민 조간브리핑』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보석 같은 존재들입니다.      

내가 『김용민 조간브리핑』에다 [최동석 칼럼]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사실 [피박퀴즈]였습니다. 이 퀴즈에는 김무성, 최경환, 김종인, 가끔 안철수가 등장합니다. 추호 김종인 선생이 퀴즈를 내기 전에 사회자인 김용민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힐 때마다, 김용민을 까는 장면이 나옵니다. 추호 선생은 주로 뚱뚱한 놈들은 샤워할 때 꼬추가 안 보인다고 놀립니다. 이때 나는 포복절도할 뻔했습니다. 김용민의 영재성(giftedness)은 이런 데서 튀어나옵니다.     

우리 동네에, 약간 과장하면 김용민의 두 배쯤 뚱뚱한 외국인이 삽니다. 스모선수처럼 걷습니다. 그가 아파트 2층에 있는 사우나장에 들어와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피박퀴즈] 이후 나에게 생겼습니다. 그는 샤워기를 틀고 양 손에 비누질을 한 다음 꼬추부터 씻는데, 그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피박퀴즈]를 듣는 재미가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피박퀴즈]와 함께 [공화국 논평]도 정보, 교훈, 재미를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최동석 칼럼]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균형을 잡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혼자 생각했죠.     

아무튼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김용민 조간브리핑』을 많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2016-06-11(토)의 [최동석 칼럼] 원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오늘은, 성과연봉제가 생산성과 창의성을 어떻게 떨어뜨리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정부가 강제하고 있는 성과연봉제를 보면, 평가를 객관화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평가지표를 수치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교사들에 대한 성과연봉제를 살펴보겠습니다.     


2.

우선 평가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째는 타당성(validity)이고, 둘째는 신뢰성(reliability)입니다. 이 두 조건은 모든 학문적 평가나 정책 평가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입니다. 이 조건을 어느 하나라도 만족시키지 않으면 그 이론이나 정책이나 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3.

우선 타당성부터 봅시다. 평가의 목적과 내용이 타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평가가, 교사들의 교육활동이 교육의 본질에 부합하는지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이렇게 하려면, 교육의 목적이나 교육의 본질에 대해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의 목표가 창의성을 계발하는 것이라고 합시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중시하니까 창의성을 교육의 목표로 정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교육의 보편적 목표는 누가 뭐래도 인격의 도야입니다. 결국 창의성과 인성이 교육의 핵심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5.

그렇다면, 평가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교사가 학생들의 창의성과 인성을 어느 정도 발달시켰는지를 측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사가 학생들의 창의성과 인성을 얼마만큼 향상시켰는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교육의 효과를 과연 그렇게 쉽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창의성만 하더라도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학자마다 다양한 정의가 있으니까요. 더구나 아이들의 인성발달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설사 측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교사의 교육활동에 의해서만 변화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사실상 교사들의 교육활동의 효과를 측정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교사를 전문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우리나라 현실에서 교사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볼까요? 평가지표가 무엇인지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주당 수업시간이 몇 시간인가, 공개수업을 몇 회 했는가, 어려운 학년을 담임했는가, 직무연수를 몇 시간 이수했는가, 보직을 맡아서 복잡한 행정업무를 처리했는가 등등... 이런 지표들이 과연 교육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평가지표가 있지만 다들 비슷한 종류입니다. 아무튼, 이 수치화된 지표들을 합산해서 S급, A급, B급, 이렇게 세 그룹으로 교사들을 분류합니다. 연봉을 S급과 B급 사이에 최대 2~300만 원 정도 차이가 나도록 했습니다. 적은 금액이 아니죠.     


7.

그래서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교사들 간에 서로 치열한 눈치작전을 펴기도 합니다. 정말 성숙한 인격의 선생님들은 이런 몰상식한 평가제도를 완전히 무시합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학생들의 창의성과 인성발달에 쏟아붓습니다. 자신의 연봉에서 얼마를 더 받고 덜 받는 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진정한 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7.1.

그러나 일부에서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보다는 높은 평가점수를 받기 위해 암묵적인 경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에 둘러싸인 교사들은 학생들을 똑같은 경쟁 환경에 내몹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서로 경쟁시킵니다. 우리나라가 청소년 폭력과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8.

그러면,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더 많은 수업시간, 더 많은 행정업무, 더 많은 직무연수. 이러한 평가지표들이 교육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시험성적을 높이는 것이 진정한 교육일까요? 교사들을 닦달해서 시험성적을 높일 수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서열화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적일까요? 이런 질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죠. 평가지표들이 교육의 본질을 전혀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9.

이 지구 상에서, 학생들에게 서로 경쟁시키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요? 영미식 교육제도를 받아들인 나라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경쟁심을 조장하는 경우가 몇몇 나라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가 아주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런 나라는 사실상 계급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그런 경쟁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무자비하게 경쟁시키지는 않습니다.     


10.

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경쟁시키지 않고 서로 협력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상대평가를 해서 학생들을 서열화하지 않습니다. 누가 1등이다 2등이다 이런 석차도 매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시험도 보고 성적도 나옵니다. 그 시험은 등수를 매기기 위한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입니다.      


11.

그러면 교사에게 진정한 성과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인격이 성장하면서 학습에 부진한 아이들이 있으면 서로 가르쳐주고, 어려운 과제가 나타나면 서로 협력하여 해결하고, 약자를 돕고, 일반 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가르지 않는 따듯한 심성을 기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진정한 성과가 아닐까요?     

 

12.

교육계는, 지금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 교육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평가결과로 보상을 차별화합니다. 평가의 타당성 조건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12.1.

그래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교사들을 이런 식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평판으로 교사를 평가합니다. 일종의 암묵적 평가라고 할 수 있죠. 교사가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주변 이해관계자들의 평판을 중시합니다. 평판이 나쁘면 학부모들은 그 교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학교 당국과 교육청에 전달합니다. 사실상 교사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타당성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평가제도 때문에 우리 교육계가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13.

이제 두 번째 평가조건인 신뢰성에 대해도 살펴보겠습니다. 평가의 신뢰성이란 다른 사람이 평가하거나 다른 환경에서 평가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평가를 믿을 수 있으니까요.     


14.

앞에서 설명한 대로, 행정업무부담이 얼마나 크냐는 것이 평가지표였습니다. 이 평가지표는 교육의 비본질적인 내용을 점수화한 것입니다. 이 수치는 사실상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지표입니다. 교사가 더 많은 시간 행정업무에 매달렸다는 것은 결국은 학생들의 수업을 등한히 했을 개연성이 높아졌다는 말입니다.      


15.

예를 들어, 홍길동이라는 평범한 교사가 A급 교사였다고 칩시다. 본인은 원하지 않았지만, 교장의 명에 따라 홍길동이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보직을 맡았습니다. 그러면 홍길동은 A급 교사에서 S급 교사로 바뀝니다. 이렇게 본인의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의도에 상관없이 환경변화에 따라 평가가 바뀐다면 그런 평가는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사들에 대한 성과연봉제는 타당성도 없지만, 신뢰성도 없는 제도입니다.     


16.

한마디로,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난 평가이기 때문에 그것이 수치로 환산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엉터리입니다. 엉터리로 성과급을 주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공교육이 처참한 상태로 망가진 것입니다. 이러한 엉터리 평가방식으로 성과연봉제를 시행하면 할수록 교육계는 더욱 피폐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학생들의 사고체계는 더욱 삐뚤어질 것입니다. 이런 식의 교육으로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17.

이런 현상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경영에도 국가운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문화가 각각 뜯어먹기 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18.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실현하는 것인데, 성과연봉제로 그것이 가능할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생산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립니다. 심리적 안정감, 일에 대한 열정과 보람, 동료들과의 신뢰관계, 이런 진정한 성과는 성과연봉제로 구현되지 않습니다.     

 

18.1.

그러므로 정부는 ‘말도 안 되는’ 성과연봉제를 조속히 폐지하기 바랍니다. 훌륭한 여러 대안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부는 이해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에게 적합한 대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멍청한 제도를 현 정부가 강제하려는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다음 시간에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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