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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un 18. 2016

성과연봉제에 맞서야 하는 이유

협력 대신 경쟁심을 인간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2016-06-18 토요일 김용민 브리핑에 나가는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9938
[0618토②] "롯데관련 MB수사? 별 거 없을 것…그러나"


성과연봉제에 맞서야 하는 이유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오늘은, 정부가 어째서 '말도 안 되는' 성과연봉제를 강제하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

우리나라 기업의 인사부서 이름이 미국식으로 HR로 바뀌었습니다. Human Resource를 줄인 말입니다. 요즘은 Human Resource가 ‘있어 보이는’ 말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시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자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미국식 경영학의 출발이었습니다.      


3.

'성과'라는 말은 영어의 performance를 번역한 단어입니다. 성과는 ‘이루어낸 결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97년 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IMF를 통해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논리를 전파했습니다. 돈이라는 결과물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성과라는 말을 이때부터 계속 쓰니까, 성과란 곧 결과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재무제표의 맨 아래 칸에 기록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성과라는 말을 bottom line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회사원들 중에는 ‘성과’를 number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숫자가 곧 성과라는 것이죠.     


4.

그러나 교육계에서 예전부터 performance라는 용어를 수행(遂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미리 계획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뜻입니다. 수행이 오히려 더 정확한 의미입니다. 교육계는 수행능력, 수행평가와 같은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5.

performance, ‘수행이라고 번역한 이 말은 본시 계량화된 수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배움에 대한 열정, 상호 간의 배려와 협력과 신뢰관계, 공부하거나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보람, 그리고 학교나 조직 내에서의 심리적 안정감 같은 것이 수행이고 곧 성과입니다. 이렇게 수행이나 성과는 본시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5.1.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이렇게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리적 현상들이 더 본질적인 성과입니다. 이런 건강한 심리적 바탕이 없으면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실현할 수 없고, 기업은 원하는 수준의 매출액과 순이익을 지속적으로 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수치로 환원하는 성과연봉제야말로,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6.

그러면이런 성과연봉제를 정부는 왜 이렇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걸까요?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정부는 친재벌, 친부자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서민층과 노동자들이 새누리당의 정책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바로 이 성과연봉제입니다기득권층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성과평가'라는 잣대로 찍소리도 못하게 할 수 있고쉽게 해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고는 노동법에 따라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새누리당은 성과연봉제와 연계해서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노동 관련 5대 법률*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노동 관련 5대 법률(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파견근로자보호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의 보호법)     



7.

이 독버섯 같은 성과연봉제가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우선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과연봉제가 교사들에게 처음 실시된 것은 2001년이었습니다. 이때가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의 공식 명칭이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러니까 15년 전부터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적자원'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용어에는 사람을 자원으로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숨어 있습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김대중 정부는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나라가 IMF 관리체계로 넘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새누리당 세력이 국가를 운영하다고 하면서 국가재정을 파탄에 이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9.

나라에 전쟁이 나면 관군은 도망가고 의병이 나타나 적군과 싸웠던 우리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IMF사태 이후였습니다. 서민들이 너도나도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해외여행도 절제했습니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났지만, 그 생채기는 아주 켰습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계가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자들의 지배전략으로 활용되는 성과연봉제가 도입되었다는 말입니다.      


10.

우리가 잘 알다시피,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서민들의 삶을 보살피려는 강력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책을 읽었다지 않습니까유럽식 모델이 미국식 모델보다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는 인간과 조직에 관한 훌륭한 철학을 가진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식 자본의 논리를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역부족이었죠. 쪽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사실상 미국이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당시를 돌아보면,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사회의 지성인들이 인간과 조직을 바라보는 철학적 사유가 부족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11.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른 유럽의 지성인들은, 인간은 단순한 경제적 동물이 아니며, 그렇게 간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사회적 역할이 주어지지만 그 역할의 크기는 다를 수 있고, 그래서 기능적으로는 불평등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적 역할의 불평등성과 인간 존엄의 평등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깊이 성찰했습니다.           


12.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수당이 국가를 운영했습니다. 그들은 이 사회적 역할의 불평등성과 인간 존엄의 평등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주택과 같은 보편적 복지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런 나라들은 돈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돈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진짜 그럴까요? 독일은 패전 후, 그러니까 1950년 전후를 보면, 전 국민이 하루 세끼를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독일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여러 국가들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 존엄의 평등성을 실현하려고 애썼습니다.      


12.1.

보편적 복지는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정신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과연봉제와 같은 무자비한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굶주림 속에서도 핵심 이슈는 경제가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오늘날 이 지구 상에서 가장 문명화된 나라를 세웠고,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은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가장 행복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13.

우리도 전쟁을 겪었지만, 유럽의 지성인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깊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후 30여 년 간의 독재정치를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민주화를 이룬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성과연봉제라는 독버섯이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강요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현되면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고 경쟁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성과연봉제가 우리의 무의식에까지 깊이 각인되면우리 사회가 억압과 착취의 악순환 고리에 걸려들게 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4.

성과연봉제는 인간을 자원으로 보는 제도입니다. 인간을 단순한 수치로 환산해서 쥐어짜는 제도입니다.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김으로써 사회의 불합리성을 볼 수 없도록 만듭니다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창의성이 사라진 무덤 같은 적막한 사회로 변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15.

북한 사회의 모습이 연상되시나요? 적막한 사회지요.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한 말이 아주 정확합니다. "북한은 권력자 혼자서 다 가지고 세습하는 사회라면 남한은 한 100명쯤이 나눠서 세습하는 사회"라는 겁니다. 세습하는 사회는 적막해집니다. 어떤 역동성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성과연봉제가 바로 이런 사회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16.

재벌들의 불법적인 세습 관행을 보십시오그리고 그 재벌가 자식들을 보십시오회사원들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습니다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원으로 취급합니다. 현대판 매관매직이라 할 수 있는 전관예우 관행을 보십시오. 관피아의 낙하산 인사를 보십시오. 그들의 세계는 서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언론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나라가 온통 썩었습니다.      


16.1.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런 불법과 부패에는 매우 관대합니다.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성과연봉제와 같은 노동자들의 삶과 정신을 파괴하는 것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17.

창조의 힘은 저항정신에서 나옵니다. 역동적인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들에게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연대하여 분연히 봉기해야 합니다. 성과연봉제에 강력하게 저항해야 합니다.      


다음 주에는, 저항의 정신은 어디서 오며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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