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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un 26. 2016

저항정신은 개인의 정체성에서 나온다

서로 연대해야만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

2016-06-25(토) 김용민 브리핑에 나간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9938
[0625토②] [김프로 단독] 국민의당 거물급 '별건' 잡은 듯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지난주 칼럼에서, 창조의 힘은 저항정신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득권자들의 계급적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 성과연봉제에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런 저항의 정신은 어디서 오며,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지금 우리 사회는 토론이 사라졌습니다. 가장 격렬한 토론이 벌어져야 할 국무회의 장면을 보면 정말 한심합니다. 대통령은 미리 작성한 메모지를 읽습니다. 국무위원들은 그걸 받아 적습니다. 일방적인 지배와 통제, 명령과 지시만 존재합니다. 북한에서도 김정은이 떠들면 주변 사람들은 수첩을 꺼내 받아 적습니다.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만이 지위를 차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짜 유능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3.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한반도에서 토론이 사라졌을까요? 우리는 왜 어처구니없는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굽신거리는 걸까요?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왜곡된 공맹 사상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지배자의 입맛에 맞게 공맹 사상을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유럽에서 예수의 사상을 지배자의 이념으로 왜곡하는 바람에 중세의 암흑시대로 빠져든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4.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논어 안연편에서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공맹 사상에서 중요한 덕목입니다. 올바른 해석은 이렇습니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신하가 신하답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임금이 임금 다울 때 비로소 신하다운 신하들이 함께 일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비가 아비다워야 아들이 아들답게 된다는 뜻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공자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임금들과 대화했지만, 임금 갖지 않은 놈들과는 함께 일하지 않았습니다.     


5.

그래서 군군신신부부자자는 조건문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역할이 큰 사람이 똑바로 해야 비로소 역할이 작은 사람들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봅시다. 윗사람이 과연 윗사람답습니까? 명령과 통제로 움직이는 조직에서 아첨하는 자들만 득실거립니다. 이런 조직에서 위로 올라간 사람들일수록 멍청합니다. 허수아비 같은 인간들이 앉아서 의전만 받고 있습니다.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합니다. 외교와 국방뿐만 아니라 민생문제에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어떤 일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 멍청한 인간들을 갈아치우거나 처벌해야 합니다. 춘추전국시대공자의 언명은 가히 혁명적이었습니다공자도 예수만큼이나 혁명가였습니다.    

 

6.

그러나 군군신신부부자자라는 덕목이 조선시대에 와서 엉뚱하게 바뀌었습니다. 모든 자리에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 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임금이 멍청해도 신하들이 임금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이고, 아비가 또라이짓을 해도 자식들이 잘 받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효(忠孝)의 개념입니다지난 수백 년 동안민중은 기득권층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길들여져 왔습니다뼈에 사무치도록 충성과 효도를 강조했습니다.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도록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각인시켜왔습니다. 계급적 질서에 순응하도록 강요받아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온갖 부조리와 심각한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저항하지 못하고 매가리 없는 사회가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7.

유럽인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충효의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이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충효를 모르는 그들을 불상놈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에게 주어진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의무를 우리보다는 더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적게 일하면서 부강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도대체 오늘날과 같은 이런 나라들을 만들었을까요? 유럽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저는 이게 무척 궁금했습니다.     

8.

유럽 사회에서 지난 수백 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문예혁명종교혁명과학혁명시민혁명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한 번씩만 일어난 게 아니라 수차례씩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런 혁명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정신에서 나왔습니다. 유럽인들은 크고 작은 수많은 혁신적인 방법으로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한두 명의 저항이 아니라 여러 명이 연대하여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저항의 에너지를 응축시켜서 폭발시켰습니다.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던 사람들이, 기존 질서를 고수하고자 하는 지배층을 뒤집어엎었습니다. 이것이 혁명입니다. 이런 혁명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비로소 사회는 발전합니다.     


9.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혁명이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사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유럽은 동양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문명이 유럽 문명보다 더 앞서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19세기 청나라가 쇠퇴하면서 모든 면에서 문명의 무게중심이 서양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0.

동아시아에서는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저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항의 에너지가 폭발할 수 있을 정도로 축적되고 응축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1.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고 역사에 문외한이지만, 이 문제를 캐보고 싶었습니다. 독일 기업의 인사조직과 독일 산업을 연구하는 경영학도로서,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개인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혁명이 일어나지 못했던 근본 원인은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고 오로지 집단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하도록 강요받아 왔기 때문입니다. 집단을 벗어난 개인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미분화된 사회에서 개인은 오직 집단을 위한 요소로 간주되었습니다.     


12.

서양은 개인이 없는 집단의 성립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동양은 집단이 없는 개인의 존재는 무의미하다고 보았습니다. 집단 내에서 개인의 지위를 어떻게 차지하며 그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탐구했습니다. 집단이 중시되었습니다.      


12.1.

동서양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이 차이가 혁명의 유무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서양은 개인의 자기실현이 곧 집단의 발전에 공헌한다는 생각을 했지만동양은 집단의 위계질서를 벗어나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자기실현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집단의 우두머리와 그 지배층에게만 자기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의 출세가 중요했습니다.      


13.

이런 동서양의 차이에 대한 놀라운 증거가 있습니다. 19세기 중엽, 일본인들은 개화기에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서양 언어 중에서도 individual과 society라는 개념을 번역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이 난감해했습니다. 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이룬다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날도 개인이 무엇인지 그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14.

저항정신은 개인의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개인의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하도록 하는 개별 맞춤형 교육과는 거리가 멉니다. 획일적인 교과서로 가르치고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암기하느냐에 따라 시험성적으로 학생들을 서열화합니다. 학생들을 계급화하고 차별화하여 서로 극심한 경쟁에 내몰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은, 개인이란 오직 집단 속에 적응해가는 동질적인 요소로 파악합니다. 교육방법도 획일화되고 내용도 동질적입니다.      


14.1.

모든 학생이 EBS 교재를 외워야 합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서삼경을 외워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의 교육철학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학생들마저 집단 내에서 위계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 안에서만 존재하도록 강요합니다.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은 없고, 집단 내에서의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요소로서만 개인이 존재할 뿐입니다. 위계질서를 깨는 사람은 그 집단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 집단 내에서 출세하는 것이 직장생활의 유일한 목적이 되었습니다.     


15.

그렇다면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개인을 찾아야 합니다. 개인이 없으면 저항할 힘도 없습니다. 집단 속에 존재하는 요소로서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서 개인이 되어야 저항할 수 있습니다.     


16.

개인이 없고 집단만 있는 사회는 유령과 같은 사회입니다. 청와대는 하나의 집단이자 단위조직입니다. 기자들이 가끔 청와대에서 무슨 말을 했다고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청와대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청와대가 말했다는 것은 청와대의 누군가가 말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말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누구를 지칭하지 않은 채, 그냥 개념적 실체인 청와대가 말했다는 것은 청와대라는 유령이 말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청와대 대변인도 그렇습니다. 정부는 이렇게 결정했다고 브리핑합니다. 누가 그렇게 한 것인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정부라는 조직을 유령처럼 만들어 놓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죠. 기자들은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강제로 끝냈다고 보도했습니다. 누가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말하지 못하고 해양수산부라는 유령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유령과 같은 집단이 우선입니다.     


17.

이렇게 우리 사회는 어떤 집단을 마치 개인처럼 의인화함으로써 그 집단 내의 개인의 존재를 무력화시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으로 거듭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들은, 행위주체가 없는 어떤 집단이라는 유령과 상대해야 합니다.      


18.

우리 사회는 수많은 유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유령과 싸워야 하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유령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령이 아닌 개인과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과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령을 말하는 사람들은 토론을 두려워합니다. 토론이 사라진 사회가 되었습니다. 


19.

유럽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불합리한 것에 대해 저항하며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혁명을 일으키려면 각자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그래야 인간으로서 옳고 그름선과 악아름답고 추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그래야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됩니다.

     

20.

주체적인 인간이 되어야 불합리한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저항의 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배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는 것입니다. 서로 연대해야만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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