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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Feb 07. 2022

두 번째 새해와 다짐들

시간이 낡았고 모든 게 변했어도

새해가 두 번 있다는 건 썩 괜찮은 일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좋다.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살 때도 회사에 출근할 때도 택시에서 내릴 때도 나는 어김없이 타인의 복을 기원한다. 새해는 모두가 본인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내 소망을 눈치 볼 필요 없이 맘껏 표출할 수 있는 기회다. 평소에는 과한 친절에 사뭇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는 웃으며 화답한다. 우리나라에는 양력과 음력 두 번의 새해가 있는 탓에 그만큼 미처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새해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다. 누구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2022년이 되기를.




코로나 확진으로 1월은 후딱 가버렸다. 흩어졌던 새해 다짐을 구정이 되어 다시 한번 두 팔 벌려 모아보았다. 발레와 이직 준비. 아쉽게도 발레는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집에서의 격리 기간이 너무 지겨웠던 나머지 집에서 운동을 과하게 해버렸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쇄골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가봤더니 인대염이란다. 1주 있다가 조금 괜찮아졌길래 다시 턱걸이, 딥스를 했는데 역시나 도져버렸다. 2월까지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는 무리일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일정이 꼬여버려 이직 준비도 원만치는 않게 되어버렸다. 맨몸운동도 어려우니, 남은 건 글쓰기 하나뿐인가.


여러모로 붕 떠버린 2월이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볼까. 

일단 롤을 지웠다. 새해의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협곡에서 사용해버렸다. 세봤더니 햇수로 벌써 10년째 플레이를 했다. 친구들과 함께하면 재밌긴 하지만 그뿐이다. 10년 했는데도 실력이 이정도인걸 보면 크게 소질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 번 시작을 하면 유독 자제가 안되는 게임이다. 혼자 살다 보니 밥도 안 먹고 할 때가 꽤 있었다. 남은 올해에는 정말 다시 깔지 않아야지. 

마침 가장 짧은 달이다. 날짜를 보니 벌써 반의 반이나 왔다. 그런 만큼 더더욱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해보려 한다. 새로운 음악 듣기, 책 읽기, 영화 보기 정도로 정해봤다.

최근에 꽂힌 노래가 있다.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잠든 너의 맨발을 가만히 보다  

왠지 모르게 벅차올라 맺히는 마음 

방 안 가득 달큰한 호흡   


모든 너의 모든 곳에 입 맞출 수 있어  

끈적하게 달라붙은 너와 나의 살에  

새벽내내 이슬을 묻혀   


저 바깥 바람은  

틈만 나면 껴들어 춥게 해  

조금 더 안을래 가까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이   


있잖아 난 너를  

아직도 사랑해  

시간이 낡았고  

모든 게 변했어도   


있잖아 우리는  

그냥 이대로 살자  

대단치 않아도  

둘이서 매일을  

조그맣게



출근하는 길에 검정치마였나 너드케넥션이었나를 틀었는데 다음 노래로 자동 재생이 되어 찾았다. 토요일 오후 2시 방 침대에 누워 포근한 햇살에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은 노래다. 어떤 한 사람에게 가사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씩 대단해야 한다는 강박이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조그맣게 충만한 삶을 추구한다.


책은 조금 많이 대단한 사람에 대해서 읽고 있다. 칭기즈칸과 종교적 자유에 대한 책이다. 책의 요지는 칭기즈칸이 전 세계를 정복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마주했고 제국의 안정성을 위해 각 문화권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퍼슨과 프랭클린도 칭기즈칸 전기를 읽고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칭기즈칸의 통치 철학이 미국 독립선언문의 바탕이 된다는 주장이다. 침대에 누워 한 사람이 세계를 제패해나가고 제국의 뼈대가 될 시스템을 세우는 걸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게 마냥 재밌다가도 

"나도 한 번 사는 인생 한 번 해봐?"라는 생각에 근질근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틈만 나면 보고 있다. 어제는 홍상수의 <풀잎들>을 오늘은 <빌리 엘리어트>를 봤다. 특히 후자가 좋았다. 워낙 유명해서 시놉시스는 대충 알고 있었음에도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동료들을 배신하고 광산으로 걸어가는 아버지와 그를 말리는 장남이 대립하는 장면이 가장 강렬했다. 실제로 영화는 대처리즘이 초래한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을 조명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징으로 빌리를 설정한다. 마을을 살아가는 너무나 많은 이들의 고통 속에서 한 송이 꽃이 어렵사리 피어나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아버지와 빌리가 들판에서 맘껏 웃으며 서로를 껴안을 때는 내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2월은 이렇게 음악을 듣고 책을 보다가 질리면 영화를 보는 식으로 보내려 한다. 그러다 가끔 글도 쓰고. 그간 블로그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다시 고향인 브런치로 돌아오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의 글을 있게 해준 곳이다. 그리웠다. 시간은 낡아가고 모든 건 변하지만, 계속해서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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