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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Aug 02. 2022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을까

220802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을까.


최근에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고 사는 사람을 두 명 봤다. 크몽 박현호 대표와 뮤지션 장기하다.

박현호 대표는 회사에서 스타트업 콘텐츠를 촬영하던 차에 만났다. 촬영 전 사전 조사를 하는데 과거 인터뷰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만 해도 인생이 짧습니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어른이고 싶어요." 멋있었다. 나도 이런 어른이 되어야지 싶었다. 만나서 얘기해 본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34도에 이르는 낮인데도 전동 킥보드를 타고 오셨길래 왜 그러셨냐고 물어봤더니, 어제 막 집에 온 킥보드라 꼭 타고 싶어서 그랬단다. 심지어 최근에는 프리다이빙 마스터 자격증까지 따셨단다. 회사를 이끌어나가기도 쉽지 않을텐데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찾아내고 해내버리고 마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가는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이 있다.

(인터뷰 링크: https://content.v.kakao.com/v/5a5c868be787d00001539154)


여담이지만 사실 꽤나 예전에 인터뷰했던 자료라,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셨어요?"라고 물어봤을 때 막상 대표님은 꽤 당황하셨다. "처음에는 개발자 출신이기도 하고 제일 재밌어서 개발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대표로서 경영에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회사 운영에 꼭 필요한 일을 함으로써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프리랜서 마켓 크몽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에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회에 기여한다는 뿌듯함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전환했던 것 같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억 속에서 조합한 거라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여튼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점은 하고 싶은 것(want)과 해야 할 것(must)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want와 must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할 수 있다는 것. must가 want가 되는 사례를 봤으니 반대는 없을까? 피아노 학원을 처음에 등록할 때는 want였겠지만, 술 마신 다음 날 토요일 아침에 가는 피아노 레슨은 must가 될 수도 있겠다. 좀 더 가보자면 한 가지 대상에 want x%, must y%(x+y=100)와 같이 하고 싶은 마음과 해야한다는 마음이 공존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너무 하고 싶으면 "이건 해야만 해", 뭐 "이건 못 참지"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장기하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올해 나온 <공중부양>이라는 앨범이다. 심지어 상무님 추천으로 듣게 됐다. 예전에는 장기하의 음악이 어디가 좋은 지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그의 음악의 핵심은 말 맛에 있었다.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그가 예를 든 구절이 "우리 지금 만나"라는 가사였다. 일상적으로 발음할 때 "지금"에서 음이 올라가고 "만나"에서 내려오는 점에 착안해서 실제 악보에도 음을 그렇게 반영하는 식이다. 장기하의 랩이 유독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귀에 익숙한 대사들과 예상을 벗어나는 멜로디 전개 그리고 특유의 개똥철학의 조합이 자아내는 매력이 상당하다. 이런 음악을 하는 그에게도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이 있을까?

다른 방송에서 유재석이 장기하가 쓴 책 내용 중에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다."라고 적힌 부분을 인용하면서 묻는다. 정말 그러냐고. 장기하의 대답은 "그런 편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건 어려운데 어렵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여유가 있어서(혹은 있는 집안에서 자라서)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조세호의 질문에는, 여유는 상대적인 것이고 본인보다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 보다도 자신이 더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나도 똑같이 생각한다. 하나 더한다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할 것에 우선할 수 있는 용기다. 지독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사치처럼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으로 삶을 채우는 것은 오직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iIvBC_1VdXw)




나는 대단히 똑똑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느끼는 부분에 무력감을 느끼고 삶의 늪에서 우울과 허무함에 허우적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삶을 뚫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용기에 있었다.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할 용기, 내가 원하는 길은 누가 뭐래도 끝까지 갈 수 있는 용기말이다. 스스로 직선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말을 할 때도,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도, 레이업을 할 때도 나는 직선적인 편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용기의 원동력은 융통성 없는 자기 탐구에 있었다. 다른 것에는 게으르고 구부러질 때도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유독 집착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단서를 하나씩 찾아나갈 수록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인지할수록 행동에 옮기는 게 쉬워진다. 망설임 없는 직선이 된다.


최근에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복수의 사람들에게 받은 피드백이 있다. 첫인상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스스로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거다. 약간 충격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르시시스트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다. 생각해보니 지인이 "넌 항상 취해있어. 술에, 아니면 자기 자신에."라는 말도 했었다. 복수의 상대방이 그렇게 느낀 이유가 보통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보다 내가 노출하는 나의 모습이 더 과다해서 그런 건 아닐까. 나는 누구보다 타인과의 따뜻한 교류를 기다리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만약 여지껏의 관계들이 나의 일방적인 소통으로 채워졌다면 지금까지 친구들이 남아 있을 리가 없을 듯하다. 다만 문화라는 건 무서워서, 한국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이에 보통 사람에게 기대하는 행동 양식이 있으면 자리에 따라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모난 돌이 스스로에게 정을 때리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했던 "니 와 나대노?"라는 질문과 궤를 같이 한다. 끝없는 자기 검열과 자아 평준화. MZ세대와 함께 한국에도 개인주의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던데, 얘들아 힘줘! 쪽수가 달려서 힘준다고 될 일인진 모르겠다만.


어쨌든 나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요즘엔 주말에 춤과 노래를 배우고 있다. 러닝도 종종 하고 오늘은 턱걸이도 20개 해보았다. 팔이 아직 다 붙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천천히 부하를 늘려나갈 셈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친구가 창업한 투자 관련 스타트업을 지원하면서 투자도 함께 적극적으로 공부해보려 한다. 사실 투자는 해야 할 일에 가까운데, 해야 할 일에 너무 오래 방치된 나머지 발효돼서 하고 싶은 일로 전환된 케이스다. 그래도 x대 y의 비율은 3:7 정도인듯. 글은 다시 매일 써보려 한다. 계속 너무 길어지는데 매일 쓰려면 좀 짧게 치고 나가야겠다. 중국어도, 스페인어도 하고 싶고 크로스핏이나 필라테스도 해보고 싶지만 일단은 보류다. 피아노도 색소폰도 차례를 기다려야 할거다. 새삼 인생에는 참 재밌는 게 많다. 다 해봐야지. 친구들에게 매번 하는 얘기가 있는데, 그걸로 글을 마치겠다.


해야 할 일은 많이 했다. 이젠 하고 싶은 것 맘껏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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