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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Jan 26. 2023

끌리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

230125

끌리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흔히들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사랑에 흠뻑 빠졌을 때의 감정은 절대적이다. 그 사람 생각이 자꾸만 나고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건 물론 밤에 잠이 오지도 않기도 한다. 혹자는 결국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얕잡는 이 과정이 나는 관계의 시작에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성의 통제를 기꺼이 벗어나버리는 감정이 꿈틀일 때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진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생각이 있다고 했던가. 끌림 없이 관계를 시작하고, 결혼도 가능하다는 친구를 만났다. 그녀가 관계에서 추구하는 것은 편안함이었다. 좋은 배경, 모나지 않은 성격, 자신을 좋아해주는 마음을 갖춘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다섯 번 정도 만났는데 감정적으로 끌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과 있으면 편안하고 안정감이 들어서 좋단다. 이쯤 되면 그녀는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원해본 적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녀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6년 전쯤, 4개월 정도 만난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껴봤다고 한다. 서로 열렬히 사랑했지만 한 사람이 외국으로 떠나게 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몇 차례 연락과 만남이 있었지만 결국에 둘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이 사람과의 관계를 추억으로 남기고 결혼은 자신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하기를 원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그 사람과의 만남이 남긴 상흔 때문이지 않을까 했다.


함께 있었던 다른 친구도 거들었다. 끌림을 정의해 보라던 그는, 내가 머뭇거리자 격정적인 끌림 없이 관계를 시작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는 사례들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내가 관계의 시작에 있어 지나친 자극을 추구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가 유년시절 충족되지 않은 불안을 관계에 투영해서 내가 누군가를 강렬히 원하는 그 감정 자체를 욕망하는 것은 아니냐는, 다소 아리송한 말도 했다.


설 연휴가 시작될 때 뜻하지 않게 길어졌던 이 논쟁은 며칠간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을 느끼는 상대와 함께 관계를 시작하는 게 맞다는 말인가. "그저 괜찮은" 다음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는 게 정말 맞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오늘 다른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그는 결혼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인생 선배다. 그와 그의 나이대 친구들을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의 결론은 관계를 시작할 때 끌림은 필요하다는 거였다. 자연스럽게 그 끌림은 편안한 감정으로 접어들고 두 감정 모두 사랑으로 통칭하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끌림이 없다면 관계를 지속해 나가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끌리지 않은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살다 보면 매력적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럴 때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편안함과 안정성을 극도로 추구하는 사람은 결혼 후에 만날 외부 자극에도 둔감할 수도 있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결국엔 어떤 절대적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역시나 바보였다.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관계의 시작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게 결론이다. 안정성과 끌림 사이에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스쳐 지나가고 본인의 본성과 경험에 따라 어떤 경향에 도달하게 된다. 그 경향에 따라 자신과 함께할 사람을 선택해 나가는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가 원하는 게 뭔지를 지독하게 정의해 내는 것이다. 단지 그게 어려울 뿐. 


끌리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격정적인 사랑이 편안한 사랑으로 모습을 바뀌어가는 관계 속에 있고 싶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을 더 들여다 보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 아닐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머리 깎고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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