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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May 07. 2023

다 잘하고 싶다는 굴레 속에서

230507

삶에 짓눌리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잘 쓰고 싶어서 두 문장을 썼는데도 몇 번을 고쳐 썼는지 모른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게 나름의 신조였다. 열심히 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순간의 직관에 의존해 일단 결정을 내리고 아니다 싶으면 또 다른 결정을 택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명백한 후자였다. 말하고 고민할 시간에 무언가를 하는 게 더 속이 편한 성향이었다. 뭐든 계속하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 꽤 잘해 보이는 경지까지는 이르게 된다. 


문제는 어느 순간 무언가를 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불현듯 생각이 난다는 점이다. 이럴 땐 내가 어떤 과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기계가 된 것만 같다. 꼭 업무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내게 부과된 역할이 버거워질 때는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챙기는 것도 아픈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 것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스스로와의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다가 심심할 때면 나타나는 문장들이 있다. 내게는 김혜리 기자가 마이클 베이가 만든 <트랜스포머>를 보고 썼던 평론 중에서 "베이의 영화에는 속도는 없고 속력만 있다."는 문장이 그렇다. 무작정 달리고 있지만은 않은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 생각에 이르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가치들을 한 번씩 해체하게 된다. 사랑, 가족, 일, 건강은 각각 얼마나 내게 중요한가. 예전에는 절대적이었던 사랑의 지위가 이젠 완전히 건강에게 밀려났다. 건강해야 사랑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결국 나 자신과의 관계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표면적으로는 당연해 보이지만, 스스로와의 관계는 삶의 현장에서 너무나 자주 최후순위로 밀려난다. 삶에 짓눌린다는 기분도 공허함도 결국 나와의 관계를 소홀히 한 것에서 온 건 아닐까. 단순히 하루아침을 5분 명상으로 시작한다고 될 것도 아니다. 삶의 중심을 나로 설정하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와의 대화가 아닐까.


글로써 조금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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