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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의도시락 Aug 10. 2023

도시락 14일

나는 지성인이다 - 갈빗살 야채볶음



오늘의 메뉴

갈빗살 야채볶음



나는 고기나 면종류를 먹거나 국밥을 먹을 때 체면을 지키면서 먹기 위해 얌전하게 먹는 편이다. 하지만 간혹 체면과 눈치를 보지 않는 곳에서 먹을 때면 상대방들이 배고팠냐고 물어보는 편이다. 처음부터 눈치를 보면서 먹었던 건 아니었다. 교대근무를 하는 첫 회사에서 첫 출근날 교대 근무를 위해 남자 직원과 둘이서 식사를 하러 갔다. 설렁탕인가 순대국밥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따뜻따끗한 국밥 한 그릇에 밥이 나왔던 메뉴였다. 자연스레 밥공기를 국밥에 말아버렸는데 그때의 남자직원분이 엄청 웃으셨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는지 몰라 여쭸더니 여자분이 밥을 통째로 말아 드시는 건 처음 봤다나? 그때의 감정이 어땠었는지는 희미해졌지만 그 이후로는 모르는 사람들과 먹을 때에는 체면을 생각하게 되었다.


두서없이 쓴 이 이야기가 도시락과 무슨 상관이지?라고 생각이 들지만 나름 이유가 있다. 갈빗살 야채볶음을 만들기 위해서 식재료를 살 때의 나의 모습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무력한 직장인이 된 것이 무뎌질 때쯤 도시락을 싸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이나마 있구나 하고 위안을 얻고있는데, 단점으로는 풍족하게 먹기 위해 의외로 식재료를 사면서 큰 손이 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트에서 고기를 100g, 200g씩 소분된 것을 사는 게 아니라 통으로 된 원육을 산다. 원육을 사서 집에서 지방을 좀 걷어내고 소분을 하고 보관을 한다. 소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게 보통 당일날 소주와 함께 남편과 한 근 정도를 먹기 때문에 그 이외에 남은 고기가 다음날 도시락 메뉴가 되곤 한다. 고기도 집에서 먹을 때에는 거의 자르지 않는 편이다. 길면 긴 대로 밥에 싸 먹거나 구워진 긴 고기 위에 각종 가니쉬를 얹어서 돌돌 싸 먹는 재미로 먹는데 역시나 집 밖에서 먹을 경우에는 가위를 주신 사장님의 손이 부끄럽지 않게 한입크기로 잘라먹는다. (체면치레는 덤이다)


오늘은 집에서처럼 고기를 통으로 먹는 게 아니라 도시락 반찬으로 나름 균형을 맞춘 야채들과 함께 회사에서 식사를 한다. 회사에서의 채면을 생각하고 적은 양이라도 빨리 먹는 습관을 버리자고 다짐해 본다.

(비하인드) 가끔 남편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다시 보게 될 경우가 있는데 매번 똑같은 장면에서 나를 쳐다보며 세뇌를 시킨다.


'이건 다 내 거다'

'누가 안 뺏어먹는다'

'나는 지성인이다'

'난 음식을 씹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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