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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somLEE 티솜리 Nov 29. 2024

노화의 종말 vs. 우리는 왜 죽는가

무늬만 이과 남자의 과학책 읽기(생물학 01)

뉴턴이 협회장이기도 했던 영국왕립협회가 있다. 이 협회의 모토는 ‘눌리우스 인 베르바’(Nullius in verba)' 이다. 의역하면 '누구의 말도 믿지 마라'는 뜻이라고 한다. 3년의 간격의 두고 읽게 된 두 저자의 상반된 주장을 담은 책을 읽고 생각한다. 믿지 않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나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믿음은 생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 곧 미래의 변화를 추동하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니까.


하버드 교수이고,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2014)에도 선정되었던 데이비드 A. 싱클레어의 <노화의 종말(LIFESPAN: Why we age-and why we don't have to)> 이라는 책이 있다. 그리고 영국왕립협회장을 역임했고,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던 벤키 라마크리슈난의 <우리는 왜 죽는가(Why We Die)>가 있다. 영화소개 TV 프로그램 ‘영화 대 영화’ 처럼.


싱클레어는 <노화의 종말>에서 노화는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질병이므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질병을 고칠 수 있다면 수명은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라마크리슈난은 <우리는 왜 죽는가>에서 현대 분자·유전학 생물학자들이 자신의 이익(본인이 세운 회사)을 위해 생명연장 기술을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화의 종말>에 대해서도 콕 집어서 비판한다. 싱클레어는 여려 제약회사와 얽혀 있는 인물이니까.


챗GPT로 유명해진 오픈AI CEO 샘 알트만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대로 사후 냉동 보존을 원하고 있다. 라마크리슈난은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싱크레어는 <노화의 종말>에서 유명한 SF 소설가 아서 클라크의 말을 인용한다. 여기서 싱클레어에게 저명하지만(노벨상 수상) 나이 든(1952년생) 과학자는 라마크리슈난 일 테다. 물론 본인이기도 할 테고. 


"저명하지만 나이 든 과학자가 무언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거의 확실히 옳다. 그가 무언가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아서 클라크


아서 클라크의 말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싱클레어와 라마크리슈난의 대결은 싱클레어의 승일까? 싱클레어의 <노화의 종말>을 아주 아주 흥미롭게 읽었었다(3년 전이다). 그런데 라마크리슈난의 <우리는 왜 죽는가>를 읽고나니 생각이 흔들렸다.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현대 인류의 최대 수명은 122세로 알려져 있다)에는 라마크리슈난이 옳은 것 아닐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사피엔스>에서 고찰한 유발 하랄리는 어쩌면 싱클레어의 <노화의 종말>에 손을 들어줄 것 같기는 하다. 하라리는 현재의 인간 종(호모 사피엔스)는 진화를 거듭하다가 사라지고 신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니까. 신이 된 인간, 호모 데우스, 그의 책 제목처럼 말이다.


하버드 의대 교수와 노벨상 수상자의 저작인데 분자생물학에 대한 지적 깊이를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두 책이 주장하는 결론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어쩔까? 일단 한 번씩은 더 읽어보아야겠지? 


벤키 라마크리슈난, 김영사, 2024년 vs.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부키,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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