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수학분투기 프롤로그

엄쓰아더(엄마가 쓰고 아빠가 더하다) 1 – 좌충우돌 수학분투기

by TsomLEE 티솜리

아내에게 간단히 사용 방법을 설명해 주면서 블로그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앨빈과 풍뎅이>라는 이름의 블로그가 시작되었다. 글이 재밌었다. 아내(풍뎅이)의 아이(앨빈) 육아 일기라 할 수 있었는데,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니 내게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년 동안 블로그 글이 쌓여갔을 때, 아내와 함께 공유 일기를 쓰듯이 언젠가 함께 한 대목씩 글을 나누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천하지는 못했다).


아이는 이제 어느새 성년이 되어 현재 병역필 대학3학년이다. 아내가 기록해 두었던 우리 아이 앨빈의 성장 이야기에 현재의 나의 감상을 덧붙여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글은 약간의 편집만으로 여기 브런치에 그대로 옮겨놓을 계획이다.


아내의 블로그 카테고리 중 <재밌는 공부>의 세부 챕터 중 하나는 <수학>인데, 그 챕터의 마지막 글은 2022년 4월 4일에 올라와 있다. 이 글을 프롤로그로 시작해 본다.



1. 아내(풍뎅이)의 글 (2022.4.4)


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와 함께였던 추억들의 보관>이었다. 고맙게도 네이버에서 같은 날의 몇 년 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추억들을 꺼내어 준다.


9년 전, 초5 아이 시절이다. 4살 때부터 인가? 영어를 시작했고 7살 때 영유를 다녀서 초등 들어가기 전에는 아이 이름으로 앨빈이 익숙했다. 블로그 이름도. 앨빈으로 시작한다.

20241223_170717.png [출처] 네이버 블로그, [9년 전 오늘] 수학진행|작성자 풍뎅이



초5시절이다. 영어학원은 7살 때부터 중2 여름까지 다녔다. 영유 1년, 폴리 3년, 청담 4년 마스터까지. 수학은 집수학. 중2 가을부터 영재고/과학고 준비학원을 다니면서 대학합격 이전까지 이다.


영유 다니던 시절도 8시 이전에 일어나 영어공부를 했었는데 초5에는 수학 공부를 한다고 등교 전에 일어났구나. 해야 한다는 의지와 재미가 없었다면 아이도 나도 함께 하지 못했을 거다. 아이는 의지나 재미보다는 4살 때부터 영어를 시작했으니 그 습관이 수학까지 이어졌다.


의지와 재미가 없는 의무로 하는 건 스트레스가 된다. 그렇게 살 이유도 없다. 우리가 사고와 병이 아니라면 백 년을 살게 된다. 이제 오십 년을 살았고 남은 오십 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흘러가는 데로 살지는 말자.



2. 남편(티솜리)의 덧말(2024.12.23)


아이(앨빈)가 원하는 대학을 간 것은 아이의 노력은 논외로 두고, 누군가에게 공을 돌려보자면 엄마 90%, 아빠 10%다(부모를 제외한 다른 분들도 또한 논외로 두자). 아내는 내가 아이 앞에서 자기를 무시한다고 자주 투덜거리지만(투덜거렸지만) 그건 나의 본심이 아니다. 아이에게도 늘 얘기해 주는 말이다. 너는 엄마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물론 아내와 나 우리는 잘 자라준 아들이 무척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자주 말해준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아내와 내가 교육에서 일치한 부문은 두 가지였다. 영어와 음악은 무조건 취학 전부터 가르치자. 물론 아주 강력한 단서조항은 있었다. 아이가 싫다고 하면 일단 중지한다(그 대표적인 예가 수영이다).


영어유치원에 대한 비판의 이야기는 많다. 우리 아이도 아마 매월 100만 원 가까이 학원비로 지불했을 것이다. 강남의 학원이 아니라 경기도 부천의 학원인데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할 수 있다면 영어는 마스터해두어야 한다는 소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행히 아이가 잘 따라 주었고, 지금 아이는 강의가 모두 영어로 진행되는 대학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원어민만큼의 발음은 아니지만 토플 리스닝은 만점을 받았다. 글로벌하게 세계인과 함께 학업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이 브런치 북은 영어가 아니라 수학에 관한 글이다. 아니 아이 교육에 관한 글이다. 영어는 유치원부터 학원의 힘을 빌렸지만 수학은 아내가 오랫동안 집수학을 고집했다. 나도 암묵적으로 동의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어느 시점부터는 학원수학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공부는 스스로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이 글에서 말했다. “의지와 재미가 없는 의무로 하는 건 스트레스가 된다. 그렇게 살 이유도 없다.” 아내와 나는 가치관이 많이 닮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늘 이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충실히 살아가고자 한다.

2003년12월(금강산콘도).jpg 아이 18개월 즈음(출처: 내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