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의 계절에
사람들은 이지선다형 문제를 좋아한다. 직업 선택에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 어느 쪽?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의 논쟁처럼 한쪽으로의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앞의 문제에 대한 나의 선호는 확실하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자는 쪽이다. 입시의 계절에 생각을 확장해보면 대학 이름보다는 전공 학과를 선택하자가 된다. 조금 결이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공과대에 입학했다가 심리학에 매료되어 심리학과로 재입학했던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같은 분도 있다. 좋아서 재입학 시험까지 치를 정도면 잘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최인철 교수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을 전체 수석으로 졸업했고, 현재 나의 최애 심리학자가 되어있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한평생 직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질수록 변화에 더 큰 힘이 필요하다. 잘하면 좋아하게 된다고 하지만 좋아해서 잘하게 되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들지라도 이겨낼 힘이 생기지만, 잘하기는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은 그 시간 자체가 고역이다.
두 가지 명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다 보면 그 일을 좋아하게 된다.
-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다 보면 그 일을 잘 하게 된다.
상기 두 명제에는 ‘잘 할 수 있는 일 = 돈을 벌기에 용이한 일’, ‘좋아하는 일 = 잘해도 돈을 벌기 어려운 일’이라는 전제가 은연중에 깔려 있다.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을 우리는 명심한다. “젊을 때는 인생에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알겠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전자를 따르라 조언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기 보다는 돈을 버는데 유리한 직업을 가지라고 강권한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다 보면 그 일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편안함을 좋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 익숙함에서는 오는 권태는 무시한다.
초등3학년 아들 일기가 때때로 생각난다. SNS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일이다.
제목 : 시험
오늘 학교에서 시험을 봤다. 1교시는 국어, 2교시는 사회, 3교시는 수학, 4교시는 과학을 보았다. 시험을 보면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열심히 공부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2011년 4월 25일, 초등 3학년 때의 일기
아이를 기르면서 어찌 숱한 후회와 반성이 없었겠냐만은, 아이에게 '등수'에 대한 스트레스는 주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썼다. 영재고 입시 준비학원에 뒤늦게 들어가서는 수학 기하 파트에서 4점을 받았을 때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학원 수업이 재미있느냐고. 아들은 재미있다고 했었고. 그러면 됐다고.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배움 그 자체에 네가 재미를 느끼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입시의 계절에는 합격보다는 불합격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온다. 세상사 새옹지마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훗날 좋은 결과의 원인으로 작동했던 경험을 숱하게 겪어 왔으니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이 무의미한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생을 살아가는 근본 힘이다. 그 믿음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