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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 Soo Nov 09. 2019

양주보다는 소주, 카나페보다는 지짐이

진솔하게 삶을 살아가기

추운 겨울에 찾았던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의 바람이 매서웠던 어느 날 하루 종일 내 발이 되어준 작은 렌터카를 반납하고는 허기진 배를 촉촉이 적실 요량으로 식당을 찾아 나선다 해가 짧은 탓일까? 아니면 일몰 후 급격히 떨어지는 추위 탓일까.. 하나같이 문을 닫고 조명이 꺼진 식당들만 즐비한 거리를 하염없이 걷다가 유일하게 불이 켜진 허름한 식당 하나를 찾아내고는 무의식에 이끌려 자석에 철가루가 달라붙듯이 끌려 들어갔다


이랏샤이마세..하며 조곤 대는 인사에 옅은 미소로 화답하고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았다 의자를 내려다보니 족히 10년의 세월은 먹었으리라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주인장이 다가오고 메뉴는 어묵 전골 밖에 없다 하여 그리 달라하며 따뜻한 청주도 함께 시킨다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고체연료가 타고 있는 기구를 가져와 작은 무쇠 냄비에 담긴 어묵 전골을 올리고는 작은 소주잔에 김이 모락 피어오르는 청주를 따라준다 어서 마시라는 손짓에 두 손으로 술잔을 받쳐 들곤 호록 소리를 내며 마시니 자연스레 터지는 아~ 하는 감탄사

영하 19도의 추위에 떨었던 몸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느낌이 전해지며 친히 따라준 술잔이 고마운 마음에 오이시~ 로 인사를 건네니 옅은 미소로 화답하는 나이 지긋한 주인장의 미소가 훈훈하다


어느 여행지를 가더라도 휘황찬란한 간판이 켜 있는 곳보다는 뒷골목의 소소한 백열등 간판이 켜 있는 곳을 자주 찾는다 현실에서 살다 보면 은연중 타인에게 보여주는 허위의 모습이 지칠 때가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갖가지의 산해진미로 차려진 식탁 같다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듯, 그러나 진짜의 삶은 소주에 지짐이 한상 올려진 털한 모습이 진면목이지 않을 성싶은 건 나만의 작은 착각일까 그렇다 여행이나 삶이나 지나치게 꾸미다 보면 그 만족감은 끝이 없고 더 욕심만 가득하게 되는 건 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이끌린다 과욕과 물욕에 젖어 살던 시간이 못내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때가 왜 이제야 기억이 나는 걸까


참맛은 지금부터 라는 느낌이 드는 건 때늦은 후회로 기인함 일는지도 모를 일이며 그렇게 소소하지만 진한 소주와 따뜻한 지짐이 같은 삶을 살아가고자 함이다 소주잔이 비었을 때 조용히 다가와 온기도는 청주를 따라주는 그 주인장의 주름진 손등이 기억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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