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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 Soo Oct 30. 2016

여행은 방랑 #4

루앙프라방 - 메콩을 거슬러 오르다, 그리고 꽝시의 매력에 빠지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게 되는 날이다.

어제 좀펫으로 건너가기 전에 노바 투어에 들려 루앙프라방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투어를 예약을 했기 때문이고, 8시에 미니버스가 픽업을 하러 오기로 했기에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지런히 가방과 카메라를 챙겨 리셉션에 내려가니 어김없이 "디만"이 나를 반긴다.


"오늘은 어디 가나 봐?"

"응, 빡우 동굴과 꽝시 폭포 다녀오려고."

"와우~ 네가 어디 가는 거 처음 보니 신기 한걸?" 라고 말하며, 아침을 준비해 준다.


8시가 되어서 미니버스가 숙소 앞에 도착을 하고, 오늘 일정을 함께 할 가이드가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좋은 아침~"

"반가워~ 너 이름이 뭐니?" 라는 나의 질문에

"리챠드~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리처드 기어"라서 말야. 그러니, 날 리처드라고 불러줘~." 라고 대답을 하는 녀석. 첫 만남부터 박장대소로 시작을 하니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 한편으로, 이 녀석 또한 나 만큼 또라이군.. 이라는 생각도 들더라.


그렇게 나만 태우고 슬로 보트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한다. 혹여, 투어 멤버가 나 혼자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다른 멤버가 탑승을 한다. 연세가 지긋한 인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인사를 나눈 우리는 선착장에서 슬로 보트에 올라타고 그렇게 흙물의 메콩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간다.



하늘은 맑고, 아침이라 그런지 바람도 상쾌한 게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씨다.

함께 여행하는 인도 내외분은 인도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두 분의 부모님께서 외교관이었기에 어렸을 적부 세계 곳곳을 옮겨 다니면서 사셨다 한다. 지금은 호주에 눌러앉아 살고 계신다는 말씀도 함께 하시면서 우리 셋은 빡우 동굴을 향해 서서히 아주 천천히 메콩을 거슬러 오른다.

날 바라보시면서 직업이 사진작가 냐는 질문을 하신다. 그냥 직장인이고, 취미로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말씀에 참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며, 멋지다는 말씀도 함께 전하신다. 어찌 보면, 일반 직장인으로서 이렇게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으며, 풍류 아니 풍류를 즐기며 산다는 게 사치로 보일 수  있고, 또 그리 얘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삶을 보면, 일에 치이고, 삶에 치여서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약간의 부러움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라는 나만의 자뻑에 사로 잡히기도 하더라.

그렇게 두 분과 얘기를 하면서 가다 보니, 중간에 어느 마을에 잠시 들리겠다 한다. 바로 루앙프라방의 "위스키 빌리지"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전통 기법으로 술을 내리고, 라오스에서 유일한 국내 제조 위스키를 만들어 내는 곳이라고 가이드가 전한다.




술을 좋아하는 나 로선 방앗간이 아닐 수 없지. 선착장에 내려 올라간 입구에 바로 있는 집에서 위스키와 와인을 맛보게 되는데, 맛과 향이 독특함을 느낀다. 그래서 물어보니, 모든 술이 쌀로 빚어내는 술이라 고소한 맛을 낸다 라고 설명을 듣는다. 역시 보니 제조법이 우리의 안동소주와 많이 동일하다. 쌀로 누룩을 빚어 그걸 숙성시키고 군불을 때서 한 방울 한 방울 받아내는 방식. 오랜 시간의 결과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독특한 향과 맛에 이끌려 작은 병으로 한 병씩 구입을 하고, 마을의 골목을 걷다 보니 눈에 익은 또 다른 뭔가가 시선을 확 잡아 끈다. 바로 물레와 배틀이다. 직접 실을 실을 뽑고, 그 실을 잘 건조시켜, 염색을 하고 그 실을 이용해 우리네 배틀과 똑같은 방식으로 목도리를 직접 짜고 있는 모습을 본다.

실크는 누에 꼬치에서 뽑은 원사로 똑같은 방식으로 말리고, 염색을 하여 손수 배틀질을 해서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니 어렸을 적 이모할머니가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곳에서도 가족과 아는 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하나씩 구매하게 된다. 느낌이 참 포근하니 좋더라니.




내가 들은 이름은 밍밍.. 아마도 그와 비슷한 진짜 이름이 있을건데..

나오는 길에 마주친 아주 귀여운 아이, 밍밍이

감기가 걸렸는지 귀엽게 콧물을 흘리는 모습에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자연스레 렌즈와 눈 맞춤을 해 준다.

아마, 원래 이름은 밍밍이와 비슷한 이름이겠지만, 감기 기운과 아직 서툰 말솜씨에 밍밍이라고 들린다.

이 꼬마에게도 즉석사진 한 장 찍어주고는 옆에 있던 엄마 돼 보이는 분께 전하니 컵짜이로 인사하시고,

그리고는 아이와 함께 찍어 달라는 의사표현을 하시기에 그렇게 둘의 모습을 하나의 사진으로 담아 선사하고 짧은 만남을 뒤로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빡우 동굴.

빡우 동굴은 태국과 베트남에 의해 외침을 많이 받던 고대 루앙프라방 시절에 전국에 사원에 모시고 있던 부처님의 불상을 한 곳에 모아 불심의 힘으로 왕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한다.

원래는 그리 크지 않은 자연 동굴이었으나, 손으로 깨고 다듬질하여 지금의 빡우 동굴 사원으로 만들었다 하는 가이드의 설명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불상이 놓여 있었고, 하나하나의 불상의 모습들이 똑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신기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라오스의 불교는 한국의 불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먼저 얘기하며, 각 지방마다, 각 지역마다 모시는 붓다의 모습이 제 각각이라는 말은 전한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붓다의 모습도 자세도 조금씩 다른 이유라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얼굴의 표정도 손가락의 진도, 앉아 있는 모습과 다리의 꼬임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더라.

메콩강 직벽에 있는 빡우 동굴의 사원 위로 우리나라 여수 "향일암" 느낌이 아주 강한 수많은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동굴 사원이 나오는데 이 곳 또한 사람들이 파내어 만들어진 동굴 사원이라 한다.

들어가 보았으나 불빛이 전혀 없고, 안내를 하는 아주머니의 말이 카메라 플래시는 절대 터뜨리면 안 된다는 말을 하더라. 도저히 대불상이 놓인 자리는 플래시 없이는 도저히 촬영이 불가능하여 입구 언저리만 촬영을 하였는데 그 모습은 아래의 장면과 같다.


이게 최선이다. 그나마 카메라의 설정을 최대로 조정해서 외부 빛이 닿는 부분만 담은 것이다.

그렇게 루앙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루앙프라방 역시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와 마찬가지로 외세의 침략이 참 많은 곳이었구나 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빡우 동굴 사원의 일정을 마치고, 한 장소에 들러 라오스식 볶음밥을 먹고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꽝시 폭포로 향한다. 꽝시 폭포로 이동하는 미니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전하는 말이 이렇다. 이번에 가게 되는 우리들은 참 복이 많은 행운아 들이라는 얘기를 한다. 가보면 알게 된다면서 말이다.

다들 은근 기대하는 눈빛으로 한 시간 정도 이동하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이 즈음에서 한 명의 사람을 소개하려 한다.



자신을 라오스 요정이라 불러 달라던 라오스 여인..

그녀의 이름은 모른다. 몇번을 물어봐도 자신을 그냥 안젤라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통에 진짜 이름은 알아낼 수 없었다. ^^;;

"너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

"몇 살?"

"45살."

"그럼 오빠네.. 그럼 지금부터 너 내 남편 해라."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내게 팔짱을 끼며 혼자 뭐가 웃긴지 깔깔 대고 있더라.

"정말 너의 남편 하라고?"

"싫어? 이렇게 미인을 두고 그게 할 소리니?"

"............................ 아..."


투어 중간쯤에 합류한 일행 중 한 명이었는데, 남은 이동 내내 이 사람 때문에 다들 웃느라 정신을 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꽝시에 가면 우리 결혼식 하는 거다~ 알았지?"

"그래.. 그러자" 울며 겨자먹기로 내게 청혼 승낙을 받아 낸 그녀는 뭐가 신이 났는지 혼자 춤추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아~ 얘도 마냥 온전한 여자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혼자 피식 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일행 6명은 안젤라 덕분에 배꼽이 어디 갔는지 모르게 꽝시 폭포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꽝시폭포에 도착을 하고, 다들 개인적으로 얕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조그맣게 들리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오르다 보니 점점 물줄기가 커져 간다.

우기 끝물의 꽝시 폭포 계곡은 말 그대로 물이 가득하다. 그 소리와 물줄기의 위용은 엄청났을 정도로 컸다.



제대로 된 폭포를 만날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다이빙 지역으로 유일하게 수영이 가능 한 곳에서는 여러 무리의 서양 젊은 친구들이 다이빙을 하며, 수영을 즐기고 있더라. 한편으로는 물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혼자 여행을 온 탓에 내 짐을 맡길 곳도 없고 해서 이번엔 물에 발만 감가 즐겁게 자맥질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구에서 사온 비어라오 한 캔을 마심으로 그 욕구를 달래기만 했다.


친구들은 나무 위에서 뛰라고 하지만, 무서워서 싫다며 여기서 뛰겠다는 친구. 거기나 나무위나? ㅋㅋ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얼굴에 물방울들이 심상치 않게 튄다.

다리가 나오고, 그 다리를 바라보는 나의 입에서 단말마와 같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는 나 뿐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걷고 있는 모든 여행객들도 마찬가지. 그렇게 열린 꽝시 폭포의 모습은 정말 너무 멋진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도저히 폭포 정면에서 촬영이 불가능 하다. 촬영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기만 하면 폭포에서 부터 비산되는 물방울들로 인해 렌즈가 바로 뿌옇게 되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측면으로 돌아 촬영을 하게 되었다. 이게 최선의 장면이다.


아마 11월이 시작이 되고, 그렇게 한 달 여가 지나게 되면 수량은 반으로 줄어들 거라면서 아까 우리에게 행운아들 이라고 말했던 가이드가 옆에서 엄지 척으로 그 느낌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내 핸드폰을 가져가 사진을 담아 주겠노라 말하며 폭포 앞에 서라 한다.

이 사진이 아마 유일한 나의 루앙프라방에서의 사진이다.



경이스러운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물론 세계 여러 곳에는 이에 못지않은 멋지고 더 크며 웅장한 폭포는 존재한다. 허나 지금 이 시간 이곳에 있는 내게 있어 꽝시 폭포는 최고의 모습으로 낯선 한국인 여행객을 맞이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여행은, 그곳의 속살을 보는 것이 최고의, 최상의 여행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힘은 들고 고되기는 하지만, 두 발로 걸으며 조금씩 그들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것을 공유하고 그들과 함께 나눔이 최고의 여행이라 보는 사관이다.


소담스럽지만, 절대 가난하지 않고, 가진 것은 적지만, 그러나 그로 인해 불행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루앙프라방이 주는 대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그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들의 삶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여유로움과 그 여유로움 속에서 진실되게 빛날 수 있는 삶을 누리는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받았던 하루가 마무리되어 간다.


이제 이렇게 떠나온 여행도 이제 고작 이틀밖에 남지 않았음이 더 아쉬웠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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