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 - 시간의 여유 한가운데 서다
이른 시간 탁밧으로 하루를 열었던 이유로, 참으로 많은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
올곧이 루앙프라방의 24시간을 느낄 수 있는 오직 하루의 시간, 지나간 5일의 시간이 언제 갔는지, 왜 그토록 짧게만 느껴졌는지를 아쉬워하며, 시간 속으로 과감히 자맥질을 하려 한다.
탁밧을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상큼한 과일과 오믈렛으로 이른 아침 속을 채운다. 거의 루앙프라방에서 아침은 오믈렛이 그 주를 이뤘던 것 같다. 일단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 넘김이 좋았고, 살짝 느껴지는 후추의 향이 아침을 맞기에 충분했던 탓 이리라. 그렇게, 방으로 돌아와 부족했던 잠을 채우고는, 여유롭지만, 많이 남지 않은 루앙프라방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유토피아"
아마도 루앙프라방에서 여흥을 즐기기 위한 유일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낮에는 시간 속에서 유유자적의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하며, 밤에는 각종 칵테일로 세계 곳곳에서 입성한 여행자들을 맞는 곳.
물론 개인적으로 밤에 찾은 일은 없지만, 낮에 그것도 여행 마지막 날에 찾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칸 강의 물줄기와 나른한 시간 속에 흠뻑 취하고 싶었던 이유다. 11시경에 찾은 유토피아는 직원들이 준비작업에 한창인 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싸바이디~" 로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던
그렇게 강가 자리에 널부러 지듯 짐을 내려놓는다. 아침은 먹었지만 셰이크와 샌드위치를 시키고는 책은 한 자락 읽어 나가는 시간, 옆 자리 멕시코에서 온 부부는 들어오자마자 눕는다. 잠시 후, 코 고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숙면을 취하는 모습에 이곳이 레스토랑이 맞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누구 하나 눈치 보지 않고, 철퍼덕 자리에 앉아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음악도 듣고, 잠도 자며, 책도 읽는다.
자유,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곳 루앙프라방을 누릴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속에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하고 있는 나 또한 그 자유의 한 구성원으로 충분치 않은가? 그것이 바로 올곧이 녹아내려 있다는 방증 인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보다. 스스륵 잠에 빠져 들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콧잔등 위로 솟아오른 땀은 사르륵 말라간다.
시원하고, 달 근한 루앙프라방의 낮잠..
11시가 안된 시간에 들어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유토피아"를 나서며, 아직 가고자 하며 남겨둔 "왓 씨엥통" 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나는 길마다 낯익은 가게들과 카페, 그리고 노점들 어느덧 이 모든 것들이 여행지가 아닌 내가 그냥 살고 있는 곳 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 물이 들었구나 하고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더라.
소소함이 아름다움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그들은 단지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며,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 일건대, 그 장면을 바라보는 이 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할 뿐이다.
"왓 시엥통"
이곳을 두고 이런 말은 하곤 한다. 루앙프라방에서 하나의 사원만 봐야 할 것이라면 주저할 것 없이 "왓 씨엥통"을 방문하면 된다.라는, 그렇다, 이곳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원으로 규모와 완성도, 역사적인 가치와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있어 따라올 사원이 없기 때문이다.
"왓 시엥통"의 이름은 "왓"-사원 "씨엥"-도시 "통"-황금. 즉, 황금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참고로, 씨앙통은 루앙프라방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므앙 씨앙통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므앙"은 독립적인 지휘를 누리는 도시 형태의 국가를 의미한다.
왓 씨엥통의 대법전.
이곳은 루앙프라방 사원 건축의 모델과 같은 곳이다. 낮게 내려앉은 지붕이 마치 새들이 날개를 편 모양처럼 우아한 모습을 갖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 단아함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황금색으로 채색한 벽화와 유리 공예로 치장한 화려함이 다가온다.
장례 마차 법당, 대법전 뒤편의 삶의 나무, 씨싸왕웡 왕의 시신을 운구하기 위해 만든 장례 마차, 대법전 뒤의 와불 법당의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의 모습 (왼쪽 위부터 지그재그 순서로 설명)
왜 "왓 씨엥통"을 최고의 사원이라 칭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더라. 그 예술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안에 들어있는 옛 루앙프라방 왕조의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말 그대로 루앙프라방의 상징과 다름없었다.
특히, 대법전 뒤 벽면에 있는 삶의 나무는 수많은 유리와 크리스털 조각들을 붙여 만든 최고의 작품임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며 감탄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그 작품성은 이루 표현할 방법을 아직도 못 찾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루앙프라방의 곳곳을 두 다리로 걸으며, 온몸으로 느낀 참 여행이 아니었나 생각이 드는 지금이다.
매일 같이 하루를 마무리하던 장소이다. 15,000 kip 뷔페에서 비어라오를 곁들인 저녁을 먹었던 장소이며,
길거리 노점 국숫집에서 고수를 잔뜩 넣은 "까오삐악"으로 저녁을 먹었던 장소이기도 하고, 몽족 마을에서 내려와 수공예 품을 팔던 여고생과 웃으며 잡담을 하던 장소이고, 지인들에게 나눠줄 기념품을 구경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5시부터 시사방봉 로드를 막고, 길게 늘어서는 이곳은 루앙프라방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붉은 천막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불빛 속에서 현지 라오인들과 흥정을 벌여 소소한 아이템들을 구매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허나, 호객이 없고, 붙잡아 끄는 상인들도 없기에 너무나 자유롭게 쇼핑을 할 수 있는 즐거움 또한 있는 곳.
일주일 머무는 동안 밤이고 낮이고 사 마셨던 열대과일 셰이크 집 사장님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았기에 단골 아닌 단골손님이 되어 나만 가면 알아서 메뉴 1번을 믹싱 하여 내어 놓을 정도였다.
"나,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
"정말? 잘 팔아줘서 너무 좋았어, 황."
"나도 너무 맛있고 시원하게 잘 만들어 줘서 고마워."
"다음에도 또 올 거지?"
"그럼, 물론이지. 아마도 내 후년쯤?"
"그래, 그럼 그때도 여기 있을 거니까 꼭 다시 와."
하며, 오늘은 이별 선물이라며 한잔 진하게 갈아 내어주는 셰이크 한잔에 마음 한편에 따뜻한 울림이 자리한다.
그렇게 지인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다 고르고 나서, 내가 집에서 가끔 한잔씩 하려고 하는 라오 커피 원두를 사러 간다.
"안녕~ 리아. 나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안녕~ 황. 정말? 매일 나랑 얘기하고 그래서 좋았는데" 라고 하는 리아.
"리아, 나 커피 사려고, 이거 두 개 줘."
"두 개 씩이나? 황이 다 먹을 거야?"
"그럼, 나 커피 많이 좋아해. 얼마야?"
"써티 파이브 싸우전~."
"장난하지 마라~." 이 한마디에 환한 미소를 뿜으며
"트웬티 싸우전~"
"두 개에 트웬티? 너무 싼데."
"하나는 내 선물이야." 하며 기어코 하나 가격만 받던 리아의 마지막 모습도 너무 고맙고 이쁘게 남아있다.
"황~ 루앙프라방에 또 올 거지?"
"그럼 또 올 거야. 아마 그때 즈음이면 리아는 대학생 되어 있겠네?"
"황~ 꼭 또봐~." 하며 미소로 배웅해주는 여고생 리아. 아버지와 4명의 동생들을 돌보며 생업을 이끌어 가는 가장의 역할을 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이렇듯, 루앙프라방의 사람들은 여행자들에게도 마치 자기 나라의 사람 대하듯 모든 정을 다 내어주더라.
미소부터, 마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 까지. 이렇게 루앙프라방의 마지막 밤은 깊어간다. 발코니에 앉아 낯이 익을 대로 익어버린 동네 골목으로 내려다보며, 비어 라오 한잔에 루앙프라방의 밤을 벌겋게 달구고 있다.
그렇게 소담스럽지만, 아름다우며, 깊은 울림을 주는 곳. 이 곳은 루앙프라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