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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 Soo Sep 03. 2017

돌담 이야기

완도군 여서도 입도 이야기

태풍이 온다 해서 주저했던 여행길

다행이라고 하긴 일본에게 상당히 미안하지만 올라오던 태풍이 일본으로 행로를 바꾸는 바람에 급히 떠났던 여름 여행길 여서도의 이야기

우려했던 기상악화의 조짐은 없었다. 너무나도 맑은 하늘이기에 훌쩍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서도에 들어가는 오후 3시의 마지막 배에 승선을 해야 하기에 부지런히 뻥 뚫린 고속도로를 내 달린다 밥도 거르고 도착한 완도 연안 여객터미널이 눈에 보이고 주차장 한 구석 자리에 곱게 차를 모셔 두고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자신 있게 외친 한 마디


"여서도행 배표 주세요!!"

"여서도 배 결항입니다~"

"예? 날씨가 이렇게 맑은데요?"

"예, 맑은데 결항이에요."

"왜요?"

"몰라요."

"..............."


이렇게 허무할 때가 있을까? 어쩜 좋을까? 고민하다 일단 미리 예약을 해둔 민박집에 전화를 넣어본다.


"어머님~ 배가 없대요. 그래서 입도가 안 된다네요."

"예, 알아요 배 3척이 여기에 죄다 있는디 태풍 때문에 여다 죄다 묶어놓고 안 나가부렀네."

"그럼 어쩐다죠?"

"뭐 어쩌간디, 낼 아침에 청산도서 7시 배 타고 들어오면 되지."


그렇게 민박집과 조율을 마치고 완도에 그냥 눌러앉기도 뭐 하고 해서 청산도행 배에 오른다.

그와 더불어 일정 또한 하루가 연장되어 버렸다.

참 매번 떠날 때마다, 떠나서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 내뜻대로 되는 게 없다. 그래서 난 여행이 참 좋다. 

거의 해 질 녘이 돼서 들어간 청산도는 말 그대로 여서도에 가기 위한 1차 베이스캠프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있기도 뭐하지 않은가 콜밴 택시를 불러 서편제 촬영지로 향한다. 걸어가도 되는 거리이지만, 더워도 너무 더웠기에 도착하기 전에 지쳐 쓰러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아무런 목적 없이 들어온 청산도

역시 청산도는 유채꽃이 만발하는 봄에 와야 제격이라는 사실만 다시 아롱 새긴다.

하릴없이 어슬렁 거린 청산도의 반나절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간다. 해가 넘어가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 올 무렵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선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려오는 포구의 파도소리가 마치 자장가 같이 들리는 청산도의 밤이다.




이른 새벽 불현듯 떠진 눈은 다시 감길 생각이 전혀 없는가 보다. 열린 창문으로 가끔 오고 가는 자동차의 소리만이 들릴 뿐이며, 정박해 있는 배들이 서로 간의 어깨를 부대면서 내는 뿌드득 소리만이 귓전에 울리는 시간이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 한 병을 꺼내 벌컥이기를 몇 모금, 목대 울에 얼음장 같은 한기가 온몸으로 퍼지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잠결 마저 저 바다 건너로 보내버린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이른 아침 바다내음을 맡으러 발길을 내 몬다.



청산도의 아침 녘의 짠내 나는 상쾌함이 콧전에 시큰하다.

버릇같이 어깨에 걸쳐 있는 카메라는 어김없이 동네 길냥이와 눈 맞춤으로 하고 있다. 왠지 마른듯한 코숏 한 마리가 "너 누구냥?" 하듯 쳐다보는 아침. 이곳은 청산도다.


일찍이 문을 연 슈퍼에 들어가 시원한 캔커피 하나를 들고는 주인어른께 한 마디 여쭤본다.

"어머님, 근데 오늘 여서도 배 뜰라나요?"

"여서도 들어간데? 여서도 배라.. 그걸 나가 어찌 알것능가? 선장이 알것제."

"아..... 예 그러네요."

하고는 별 소득 없이 캔커피를 들고 나오는 걸음이 어째 좀 걸쩍 지근 하더라 물어보지 말아야 할 불문율을 물어본 것 마냥 한 없는 뻘쭘함만이 뒤통수에 꽂힐 뿐 그다지 성과는 없는 대화.


"하긴, 저 어머니가 으째 알겠어.. 물어본 내가 미친놈 이제." 하곤 원래 물어봐야 할 여객 터미널로 가서 물어보니 거기서의 대답 또한 단출하다.

"7시 10분에 들어온께 7시까장 나와보소 그때 안 오믄 안 오는 것이고~" 

뭔지 모를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 기분이 확~ 밀려 들어온다. 그렇지 7시 10분에 포구로 들어오니 그때 안 오면 안 오는 것이겠지. 이로써 다시 한번 달관이라는 경지에 다다른다.


다시 숙소에 들어가 짐을 챙겨 여객 터미널로 돌아오니 저 멀리서 사랑 5호가 천천히 청산도 항으로 들어오고 있더라. 이제 드디어 들어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 살짝 심장이 뛴다.


내가 여서도에 이렇게까지 들어가려 한 목적은 단 하나다. 바로 여서도의 돌담 때문이다.

전남 완도에서 남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섬으로 알려진 여서도에는 옛 부터 돌담길이 유명하다.

거센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주민들의 지혜로 만들어진 돌담길.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오랜 세월을 섬 주민과 함께 했던 돌담길이 최근 허물어질 뻔했으나 주민들의 통큰 결단으로 살아남게 됐기 때문이다.

여서도에는 평균 나이 70세의 어르신들만 거주를 하고 계시기에 몸이 불편한 주민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차량통행이 가능하도록 돌담 완전 철거 후 길이 350m, 너비 3m로 섬마을의 길을 확장할 계획이었으나 주민들의 양보로 확장이 아닌 노면 정비 위주로 전환, 돌담은 최대한 보존키로 한 것이다.

여서도 주민분들은 10여 년 전부터 돌담길 대신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를 원했다.

구불구불한 돌담길 폭이 1.0∼1.5m로 좁은 데다 (필자가 다녀보니 그 폭이 좁은 곳은 거의 90CM도 안 되는 곳도 있었다) 구불구불해 통행하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 오래전에 쌓은 돌담인지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도 감안됐다. 그래서 주민들은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한 끝에 2015년 도서개발사업으로 마을 안길 포장이 결정됐고 공사 구간에는 돌담길 220m도 포함됐다.

하지만 착공을 앞둔 지난해 5월 마을 안팎에서 돌담길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명절 때 찾아온 귀성객과 전국에 있는 향우회도 그 의견에 함께한 끝에 한 해 동안 고민하던 주민들은 지난달 말 마침내 돌담길을 보존하는 데 합의했다. 대신 돌담길 중 위험한 구간 3∼4곳을 다시 쌓고 길바닥을 평평하게 골라 짐수레나 삼륜차가 다니도록 요구했으며. 이 의견은 설계에 그대로 반영될 예정이다.

전라남도는 8월 말까지 현존하는 돌담의 가치와 규모, 노후 위험 구간 등을 조사해 이를 실시설계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 후 설계가 보완되면 오는 9월 착공해 내년 3월께 공사를 마칠 계획이기에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기존의 돌담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으며, 그 사잇길을 걷고 싶었다. 뭇사람들이 보기엔 좀 무모한 이유 아닐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지 모르겠으나 여행 쟁이이며, 사진쟁이로서는 메리트 넘치는 곳이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그래서 빌고 또 빌었다. 일본에겐 미안한 소리지만 일본으로 치고 올라가고 우리나라는 전혀 영향받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게 적중했고 미안은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일본의 운명인 것을..




청산도를 뒤로 하고 "사랑 5호" 힘차게 바다 위를 가르며 여서도를 향한다.

조타실 옆 뱃전 계단에 앉아 바람을 한참 맞으며 가고 있는데 선장님이 선뜻 말을 건네 오신다.


"여서도는 뭣한다고 들어간데, 뭐 하나 볼 것도 없는 곳인디."

"그래서 들어가는데요."

"으디 갈 곳도 읍고, 반나절 이믄 다 돈당께"

"알아라.. 사진작가인데요 동네 담 빼락 사진 좀 담을라꼬 드가요."

"아... 사진작가 슨상님~" 하고 던진 질문이 좀 당황스러웠다.

"돈은 많이 번다요?"

"사진으로 돈 벌진 않애라. 그냥 다른 분들께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걸 알려준다고 안 하는가요."

"쓸 때 없이 그런 걸 뭣하러 한데.." 하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는 선장님과 잠시 동안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일찍 일어난 탓 인가 선실로 돌아온 나는 바닥에 벌러덩 누워 잠이 들고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벌써 여서도에 도착해 있더라. 


도착하자마자 이미 예약한 민박에 들어가 모자란 잠을 청한다.

청주에서 완도까지 운전하고 청산도에서 일찍 일어난 탓에 쏟아지는 잠엔 아무리 해도 이길 수가 없더라. 뭐 솔직히 입도한 첫날엔 딱히 계획 또한 없었기에 손님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민박집의 방문 활짝 열어놓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이불 삼아 늘어지게 한숨 자고 일어나니 저녁 먹을 시간 민박집 어머님이 정갈하게 차려준 저녁 밥상을 받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해 넘 이를 담아보고자 방파제로 발걸음을 한다.


여서도의 석양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상승하는 순간이다.



역시 곱다. 어디 하나 날카로움 없이 해가 넘어간다.

일출과 일몰을 사진으로 담기 좋아라 하는 나 도서는 100% 만족하는 석양은 아니었지만 이곳 여서도의 석양은 참 많이 따뜻한 느낌이더라. 한 편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듯 조용히 떨어지는 태양이 이제 너도 마무리를 하라는 듯 급하지 않지만 서둘러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섬의 외곽 길을 돌아 방파제로 다시 돌아오니 바다로 더 떨어진 해는 기가 막힌 오렌지 빛을 내게 선사한다. 마치 반가워 여서도에 온 걸 환영한다 하는 듯 멋진 광경을 선사한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니 어떤 감정이 필요하겠는가?

이대로의 모습이 영원 지속되길 바라는 사진쟁이의 마음만 있을 뿐.

하루의 시작과 그 끝은 비슷한 색으로 시작해서 끝이 난다. 일출이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느낌이라면 일몰은 온 세상을 포근히 감싸는 듯한 따뜻함이다.

시작과 끝, 힘차게 시작해서 한숨 크게 쉬며 마무리를 하라는 의미 일지도 모를 일이다.




섬에 찾는 이유는 오로지 시간을 느끼고 싶어서다.

섬에 들어가는 이유는 오로지 나만을 느끼고 싶어서 이고

섬에 머무는 이유는 오로지 아무 생각을 하기 싫어서 이기도 하다.

그렇게 들어간 섬은 어떤 면에 있어서도 여행자를 방해하지 않는다. 

단지, 어서 오라는 듯 그곳에서 모진 풍랑과 바람을 맞고 기다려 주기만 할 뿐..



섬에서의 하루는 일찍 마무리된다.

내일 오랜 바람과 비를 맞고 버텨온 돌담과 조우하기 위해, 나 역시 이제 바닷소리와 호흡을 맞춰 깊은 잠에 빠질 시간이다.

내일은 은근 추적추적 비가 왔으면 좋겠다 촉촉한 돌담의 얼굴과 조우하기 위해..


섬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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