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삶의 노래였으며 생의 노래
날이 밝아 여서도의 아침이 밝았다. 낮게 깔린 구름은 그저 하루의 시작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으며 동네 고양이들의 아침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김없이 커피와 진한 담배 연기 한 자락으로 시작하는 아침
여서도에 거주하는 주민분들이 적은 탓일까? 여느 어촌의 모습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막하기 그지없다.
비가 뿌릴 듯 하지만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어젯밤 은근 비가 내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날 듯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기고, 모자를 눌러쓰고, 운동화를 챙겨 신는다.
사부작사부작 돌담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섬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걸음을 내디뎌본다.
민박 초입부터 시작하는 여서도의 돌담은 제주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며 곁곁이 쌓아놓은 모양새가 단단함이 엿보인다. 언제부터 쌓아 올렸을까? 이 정도의 노력이라면 이 섬에 부는 바람은 도대체 어느 정도 일까?라는 괜한 호기심이 은근 설렘을 선사한다.
얼마 오르지 않아 낯익은 간판이 눈에 띈다. 입도 후 처음 보는 담배 간판, 물론 담배는 잔뜩 있지만 그곳의 어른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 무작정 들어간다.
"계세요~"
"..........."
"안 계세요?"
".........."
인기척이 없다. 큰 섬은 아니지만 외부에 나가셨구나 생각이 들어 조용히 빠져나오려는데 입구 오른쪽 쪽문에서 할머님이 빼꼼히 얼굴을 내미신다. 그 얼굴엔 세월이 가득 들어 있다. 깊은 주름, 하얀 백발, 그리고 오른손에 잡혀 있는 자연산 지팡이
"뭐? 왜?"
"예?"
"뭣 할라고 불렀냥께?"
"아.. 할머니 담배 좀 사려고요"
"내가 피는것 밖에 없는디?"
"예? 쩌그 밖에 붙여놓은 담배 간판은 뭐다요?"
"아.. 그거는 길거리에 떨거져 있길래 줏어다 안 붙였간 한 보루 있응게 그거라도 주까?"
"아... 예..."
그렇게 방에서 꺼내오신 담배가 요즘은 보기 힘든 솔 담배다.
"옴마! 이 담배 요즘도 판다요?"
"안 팔제"
"그럼 어서 나셨다요?"
"꽤 됐재 그런 건 뭣할라고 물어 싼데"
"예.. 고맙습니다. 얼마예요?"
"그냥 총각 펴~"
"그래도 돼요?"
"같이 죽으믄 되지 뭐" 하시고는 호탕하게 웃으신다. 그 웃음이 하도 시원하셔서 보는 나도 한바탕 크게 웃는다
최복례 할머님. 이곳 여서도에서 태어나셨고 80 평생을 여기서 살아오셨다 한다. 자녀들을 전부 뭍으로 보내고 부군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별하셨다는 할머님의 얘기를 잠시 듣는다.
"여그는 오래된 섬이여, 옛날에는 사람이 많이 살았제 디글디글 했당게 아고 어른이고 겁나 많이 살았제 근데 참으로 시상 변하는 게 무섭드만 하나 둘 그렇게 빠져나가고는 말여 암도 안 들어오고 죽어 나가는 사람만 있는 것이제 시상이 다 그런 거여"
"할머님 여기 돌담은 언제부터 이렇게 쌓기 시작했는감요?"
"몰러~ 나가 태어날때 부터 이렇게 있었응게 검나 오래됐시야. 우덜 어른들도 그랬다는 야그도 있고 암튼 무지 오래됐어. 여그는 바람이 한번 불면 무쟈게 씨게 붕게 저렇게 안 해 놓으면 지붕도 날아가고 고추도 떨어지고 밭도 엉망이 되어 불제 그러니 시간이 되믄 될수록 더 높아졌음 졌제 낮아지지는 않은거여"
"제주도도 바람 많이 불어 이렇게 돌담 쌓잖아요?"
"제주도? 거 바람은 바람도 아니제.. 여그는 육지에서도 바람불어 바다에서도 바람불어 어떨 때는 말여 양쪽에서 불어 재껴 불면 정신이 읍당게."
그렇다 이곳 여서도의 돌담은 이분들의 삶이었고 생이었다. 살아야 했으며, 일궈야 하는 필연적인 자연에 대한 방패막인 것이다. 그렇게 할머님과의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어찌 살아왔는지 지금의 연락선이 들어오기 전에 완도에 한번 나가려면 천신만고 끝에 도착을 하셨다는 얘기, 그렇게 완도로 나가다가 풍랑을 만나 여럿 돌아가시기도 했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는 삶의 방식과 사는 게 어쩌면 처절함과의 싸움이라는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더라..
그렇게 할머님과의 자리를 마무리하고 여서도 돌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나선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연결된 돌담길은 여지없이 여서도 마을의 곳곳을 통과한다. 넓은 곳은 대략 내 한 팔이며 좁은 곳은 내 어깨가 양쪽 돌담에 맞닿을 정도다. 이러니 이곳 어른들께서 허물고 길을 넓혀 달라고 하셨구나.. 하고 그 마음과 심정이 와 닿는 듯하다.
하나하나 쌓은 돌담엔 그 틈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비워지면 바람이 들어 무너질 수 있으니 다시 채워 넣었으며 조금이라도 낮아 지붕이 들썩 거리면 지붕이 날아갈까 두려워 더 높이 쌓아 올렸다. 걸음을 하면서 연신 터지는 탄성은 제주도의 그것에 비할 수 없는 촘촘한 그들의 희로애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돌담에 피어난 다육이들이 신기했다. 일부러 심은 건가 싶어 사진을 담고 있는데 마침 한 아저씨가 나오신다.
"안녕하세요?"
"건 뭣할라고 찍는다요?"
"이뻐서요"
"별개 다 이쁘네" 하면서 배시시 웃으시는 모습이 순수하시다.
"어르신 이거 심으신 건가요?
"그럴 시간이 어딨당가? 여그 돌담엔 검나 많지 죄다 지그들이 알아서 자란것잉게~"
"자생이라고요?"
"그라지. 어서 씨가 날라왔는가는 몰것는디 예전부터 말랐다가 또 피고, 또 말라있음 디졌는가 싶어 신경 끊고 있음 다시 피고 그라지."
"아... 신기하네요. 저는 이런 다육이 돈 주고 사는데"
"어이 사진사 양반 글타고 파가고 그라믄 클낭게 그라진 마쇼~"
"예~ 그럴 리가요"
뭐는 신기하지 않을까? 이곳에서의 모든 게 신기했으며, 그 하나하나에 담기 얘기가 한 보따리이지 않을까?
해는 어느덧 올라 살짝 더위가 느껴지지 시작한다. 조금 더 오르니 여서도의 국민학교(폐교)가 나온다.
얼마나 되었을까? 언제까지 학생이 있었을까?라는 당연한 궁금증이 생기지만 마을을 다 돌고 내려갈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여행을 할 때 폐교가 있으면 당연히 들어가 보는데 이곳은 도저히 풀숲이 높아 엄두가 나지 않아 운동장에서만 그 모습을 담아본다. 아련하다 시골마을을 다니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쉽다. 허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담배가게 할머님이 말씀하신 시상 돌아가는 이치일진대..
이렇게 여서도에서 밭도 돌담에 쌓여 있다. 농작물을 강한 바닷바람에서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평지가 거의 없고 섬의 반대편은 거의 직벽에 가깝기에 이곳 마을 주변에 있는 지역에서만 밭농사를 하신다 한다. 그렇게 길을 걷다 한 담벼락 밑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고 있는데 위에서 한분이 말씀하신다.
"꽁초는 갖고 가쇼~"
"예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근데 어머님 그 창은 뭣할라고 맹그셨다요?"
"배 볼라고 안하요. 들고 나는 배 볼라고 여그는 바다가 높아서 참 뱃질이 어렵제~ 그랑게 아저씨들이 배 타고 들고 나고 하는 것 봐야 안심이 됭게 그라서 이렇게 뚫버놓고 보는 거이제"
바다로 나가는 바깥분들의 안전을 위함이리라. 또한 만선을 위함이리라.
가족의 안녕과 안전을 바라는 마음,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소중한 마음이 저렇게 표현되어지는 것이리라. 가볍게 감사의 목례를 하고 가던 길을 걷는다.
한 바퀴 도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는 않다.
하지만 오전 반나절을 다 썼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던 탓이리라.
섬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느 섬에 가서든지 진득하고 삶의 내음이 올곧이 배어 있다.
들고 나는 게 쉽지 않기에 더욱 그곳이 궁금하며, 호기심으로 다가오며 그렇게 들어간 섬은 너무나 편안한 자리를 제공해 준다. 뭍에서 묻어 들어온 온갖 때를 한 번에 씻김굿 받듯이 씻어 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이지 싶다.
섬이 보여주는 광경은 한 편의 깊은 드라마다.
오래된 옛날이야기를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듯이 조용히 귓전에 울리는 그 이야기는 한 없는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어릴 적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린 얼마나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가 그것이 우리네가 사는 삶의 이야기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들어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전혀 달라지는 곳.
그곳이 바로 섬이며, 그 섬에서 사는 분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네 이야기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섬은 우리에게 조용히 머물며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