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영화 '첫 여름'을 보고

by 닿다


영화 '첫 여름'을 봤다. 사실 이 영화를 보려고 본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에무시네마에 가보고 싶었으나 여태 가보지 못했는데, 마침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러닝 타임의 영화 '첫 여름'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보게 됐다. 이 영화의 평이 좋은 것도 영화를 보게 만든 까닭 중 하나겠지만. 그렇게 주객이 전도된 상태로 보게 된 '첫 여름'은 아주 좋은 영화였다. 단편인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이 영화가 끝나지 않길 바랄 정도로. 나는 무슨 이유에서 이 영화가 끝나지 않길 바라게 됐을까. 어떤 이유에서 이 영화를 좋아하게 돼버린 걸까. 생각지도 못한 영화 포스터를 오랜만에 받아본 탓일까. 가보고 싶던 장소에 온 탓일까. 좋아하는 광화문 근처에 온 탓일까. 나열한 모든 것이 가산점이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유는 이 때문인 것 같다.


'영순'이 살아온 인생은 단편적으로 설명된다. 자신의 손녀가 결혼을 할 정도의 시간 동안 남편 같지 않은 사람을 모시고 살았다고, 병에 걸려 대변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의 수발을 오래 들어왔다고, 강간의 시간이었다고. 그런 남편이 병에 걸려 병원에 있자 '영순'은 춤을 추러 다니고 거기서 만난 '학수'에겐 마음이 동한다고. 그러니까 관습적으로 사랑이라 불리지만 '영순'에겐 사랑이 아닌 것들과 관습적으로 사랑이 아닌 것으로 불리지만 '영순'에겐 사랑인 것을 손녀가 결혼할 때가 돼서야 만난 거다. '영순'은 손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신에겐 사랑이 아닌 것으로 인해 존재하는 손녀의 결혼식보다 자신에겐 사랑인 '학수'의 49재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영순'은 '학수'의 "영순은 어떤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에 쉬이 답을 하지 못한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나이면 최소한의 자기소개는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영순'에겐 그동안의 삶이 삶이 아니지 않았을까. 어쩌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 자체가 '영순'에겐 처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아내, 아기 엄마, 간병인이 아닌 인간이라는,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주체로 대해주는 사람이 '학수'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영순'은 '학수'를 만남으로서 오랜 시간 알지 못했던 자신을 늦은 나이에서야 마주한 것이 아닐까. '학수'로 인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으려는 일. '영순'은 어떤 사람이냐는 '학수'의 질문에 끝내 "어떤 노래에도 춤을 추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손녀의 결혼식보다 '학수'의 49재에 간 '영순'은 절에서 나오는 제사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나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좋아하는 영화마다 이유가 달라 쉽게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알게 됐다. 지독히도 좋아하는 영화들을 떠올리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버드맨'의 리건이 무대에서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일, '아노라'의 아노라가 이고르에게 안겨 엉엉 우는 일, 그리고 '첫 여름'의 영순이 절에 앉아 발을 동동거리는 일, 이 셋이 각 세 영화의 가장 좋았던 부분인데, 그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있었는지, 그러니까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는 것을 좋아하는 거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 것인지. 그러니까 이 영화가 그에 아주 부합하는 영화였다.


영화를 다 보고 광화문 광장에 한동안 서서 가만히 사람들을 봤다. 가을이지만 세상은 여름이 채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바닥 분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고 벤치에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이 보였고 웃으며 여행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위로는 높은 빌딩들과 멀리는 인왕산과 경복궁. 20여 분간 서서 그들의 삶을 생각했다. 곧 생각이 나를 향했다. 내 인생은 시작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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