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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Sep 03. 2021

차곡차곡 쌓아올린 제철의 만남.

천천히 알아갔으면 좋겠다. 신중함? vs 간보기?

감정의 선은 깊고 깊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그도 그럴게 신경 쓰는 일이 많아지면 일상생활의 불가능을 초래하므로 어딘가 불편한 감정들은 상대방에게 혹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요 근래 내가 ‘썸’이란 걸 타기 시작했는데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 연애고자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시작할 때 좋은 감정이 들면 밀어붙이는 과몰입형(?) 성격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썸이라고는 4일정도 타는 게 전부이고, 오히려 사귀면서 알아 가보는 금사빠(?)로서의 삶만 수년치 인지라 썸의 개념은 1도 없다. 알아가고 알아가는 건 사귀면 또 다른 문제인데, 일단 사귀고 시작해! 라고 외치고 싶지만, 상대는 내게 "나는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는 편이야." 라고 화답했다. 





누가 보아도 속도의 차이일까 고민을 했는데, 사실 이 부분은 속도의 차이보다 성격의 차이에 가까웠다.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마음이 식어버리기 전에 쇠뿔도 단김에 후다닥 빼줘야 하는 성격이며, 국밥은 뜨거워야 제 맛이지 하며 입천장 다 데어가며 먹는다. 그러니 연애라고 다를 게 없다. '오! 저 친구 멋있군!', '나 지금 저사람 보고 설레고 있는가?' 하는 마음이 들고나면 영락없이 눈여겨보고 집요하게 본다. 집요가 때로는 과해서 집착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기도 하지만, 막상 연인이 되고나면 '내가 이룬 것' 목록에 조심스레 연인이 들어가서 모든 걸 방목하게 된다. 연인으로서의 적절한 바운더리만 지켜준다면, 울타리 안에서 네가 무엇을 해도 난 응원하고 지지하는 편이야라는 마인드로 사람을 대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너무 내던져 놓는 건 아니다. 단지 눈이 가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여 다수의 것에 신경 못 쓰는 상황이라고 핑계를 대는 편이랄까. 한번 놀 때 제대로 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한번 할 때 이왕이면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채우고 싶어 하는 성격 급한 감성러가 나다. 


반면, 상대의 성격은 차분하다. 인생에 금방 사랑에 빠지는 감정을 경험해본 적이 없고, 돌다리는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건너야 한다는 마음이란다. 그래서 내 속도에 맞춰야 하나 싶다가도 괜찮을까 싶어 하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소개팅에서 만나 잘 될 확률이 거의 없고, 언어를 선택함에 있어 상대의 의중과 상황을 더 먼저 생각해주는 언어를 사용했다. 누가 보아도 여러 번 생각하고 여러 번 배려해본 사람이 가진 여유와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주변의 비슷한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매사 신중했고, 정확하게 자신이 바라는 바를 말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직장에서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하고 눈앞에 보이는 결과들을 토대로 계획하고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성격이 급한 내 눈에는 그들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늘 존재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서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맞추어가는 것. 물 흐르는 듯 사랑에 빠지지만, 사랑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본다면, 서로 다른 성격에 대한 사모함이나 존경심 등에서 비롯된 감정들이 아닐까. 물론 남녀 간의 어떤 이끌림과 성적인 아름다움에 근거한 형태의 호감도 분명 존재하겠다. 사람의 생각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성격 급한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상대는 간보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차분한 상대의 입장에선 성적으로 이끌리는 것인지 정말 좋은 호감인지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신중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고 돌다리를 두들기는 중이겠다.  어쩌겠는가. 썸이라고 느끼는 우리의 관계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주고 간극을 좁히는 일이 서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배려다. 그것이 관계의 초석이 되어준다면 차곡차곡 함께 추억을 쌓는 일에 어려움이 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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