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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Nov 28. 2021

생각이 나서

하나씩 천천히 알게 되는 재미와 호기심

얼마 전 한 사람을 만났다. 그때만 해도 그 사람과 별 사이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나로서는 갑작스레 다른 사람과의 약속에 자기도 끼겠다고 한 게 영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 그 사람의 상황과 환경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래서인지 속 좁은 사람처럼 어딘가 불편하게 굴었다. (괜히 그 시간들이 미안해지고 있다.) 어쨌든, 처음 그 사람을 본 날 나처럼 블로그를 기반으로 리뷰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동종 업계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이 났다. 따로 또 봐요 하고 헤어지긴 했는데, 볼일이 있겠나 싶었다가 급히 내가 또 그 사람과 약속을 잡게 된다. 블로거가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이런저런 익숙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가득 채우다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 사람의 본업과 부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다. 며칠이 더 지나 가볍게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정말 가볍게 만나 말하는 동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즐겁게 오고 갔다. 어쩐지 오래 보고 싶은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만큼 편해졌다. 그리고 분명하게 알았다. 나는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 사이 소개팅을 한다. 편안한 분위기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가볍게 식사와 가볍게 차 한잔을 한다. 분위기가 좋게 무르익어가지만 어쩐지 두 번을 보아도 그 사람을 만난 것만큼 즐거울 것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저 궁금한 것에서 그치고 만다. 더 이상 질문을 한다거나 굳이 두 번 만나자고 하기는 모호하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한번 더 보자고 하면 난 흔쾌히 나갈 의사를 표명할 것이다. 주선자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고, 주선자의 친구라면 거두절미하고 한번 더 볼 수 있다. 이 소개팅은 주선자에 의해 주선자를 믿고 주선자를 통해 이루어진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그런대로 이 사람과도 인연이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저 어디까지나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 호기심을 가졌던 나와 달리 상대방은 지나치다 싶을 나의 에너지를 받쳐줄 체력이 없다고 했다.






첫 만남이 안 좋아도 자꾸 알아가고 싶었던 사람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가 비슷했다. 다만 알아갈수록 공통점보다 차이점을 많이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같은 취미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다만 시기적으로 환경적으로 되지 않을 사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라고 이야기하기엔 지극히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견해이며, 지극히 문과적이고 분석이랄 것도 없는 단순한 개인의 사념이다.) 반면 소개팅 상대와는 어떤 것도 함께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첫 만남에 했다. 이야기가 자주 오고 가지 않았기도 했고,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같은'척'을 하고 있는 게 의도치 않았더라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하는 상대방에게서 부지런을 읽지 못했다. 사람을 한 순간만 보고 판단 혹은 정의 내릴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이럴 땐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는 그 말이 구구절절 이해되는 타이밍 었다. (그래서 연애는 타이밍이라고 하던가!)


이 타이밍이 맞고 안 맞고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성향에 따라 한 사람에게 호의와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맞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차곡차곡 쌓아지면서 경험과 연륜과 데이터베이스가 쌓여 어느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일념 하에 첫 만남의 행동 혹은 말투에서 확대해석을 한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편협하다면 오해석이 될 여지가 다분한 행동이지만 사람은 늘 그렇게 관계를 규정하고 이해하려 든다. 그리고 이 관계를 지속시킬 것인지 아닐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늘 섣부르게 판단하려고 한다. 이 사람이 아니라면 더 이상 만나는 수고를 덜기 위하여 빠른 선택을 하고자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시간이 꽤 걸린다. 30년을 살았다면 30년의 생활습관을 새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함께 쌓아 올리는 추억이 많을수록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더 가졌다는 것이니까. 이제 겨우 첫 단추를 꿴 거다. 당신의 이름을 알았고, 알게 모르게 당신의 삶을 내게 브리핑했고, 나의 삶을 당신에게 그저 브리핑한 시간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 겁먹고 도망가는 상황은 비겁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데 굳이 볼 이유 있냐고 물어보면 당신이 본 하나가 나의 전부는 아니라 말하겠다. 애초에 비겁한 사람은 그런 말도 없이 가버리겠지만 말이다. 서로를 규정하지 않고, 적정선에서 바라보는 썸의 형태는 어쩐지 이런 비겁함을 서로 합의하고 갖는 시간으로 보인다. 합의했다는 면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사실 썸!!이라고 규정하지 말고 연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먼저 알아가도 나쁘지 않을 텐데 싶다. 관계의 역할에 대해 각자가 먼저 상대를 정해두고 알아가는 "척"을 하기보다 너는 너, 나는 나, 하고 바라보는 건강한 관계를 먼저 만들고 나서 그 이후에 연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렇다. 이 글은 어느 쪽에서도 나는 비겁했다고 말하는 글이다. 사람 관계에 이렇게 고정관념이 무섭고 축적된 데이터베이스가 무서운 것이고, 확대해석이 지리멸렬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겪어보기 전에 판단하지 않고, 한번 겪어본 일로 100번 겪은 것처럼 만들지 말며, 겪은 후에도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면 그다음의 행보는 그때 정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은 그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재미있게 바라보고 즐겁게 놀고, 호기심을 가볍게 내비치면 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고 쿨하게 넘어가자. 아니면 마는 거고 하고 시크하게 보내버리자. 신경이 쓰이더라도 안 쓰이는 척하다 보면 안 쓰이게 된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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