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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Dec 09. 2021

사람을 좋아하는 일에 드는 시간

금세 사랑에 빠지는 나를 바라보는 일

대개는 보통 인생에 설레는 순간들은 생각보다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어쩌면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차츰 들어가고 갑작스레 누군가를 보고 설레거나 갑자기 좋아지거나 하는 일에 마음은 점점 더 더디게 움직인다. 그러나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과하게 포장되어 마치 그 사람만이 전부인 것처럼 묘사된다. 언제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로만 보이는 그 환상을 쫓아 나에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길 꿈꾼다. 드라마와 영화뿐이 아니다. 소설 속에선 언제나 시간의 전개가 한없이 빨랐다. 웹툰을 몰아보기로 본다면 사랑에 빠지는 일은 몇 분에 불과하다. 


그 상태로 우리는 현실을 마주한다. 우리가 보아왔던 사랑들은 몇 시간 내로 몇 분 내로 그 마음의 크기를 알 수 있으니 나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착각한다. 그것은 완벽히 착각이다. 매체를 통해 우리는 몇 분 만에 모든 상황을 속전속결한다. 동화 속 주인공도, 현실성 없다는 소설 속 주인공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상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러했으니 현실도 그런 것이라 착각한다. 그것도 모른 채, 첫눈에 반하였다 생각하고 두근대는 연심이 생겼다고 서두른다. 그러다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도 내 마음의 형태가 사랑인지 아닌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사랑의 크기나 형태를 고려하기엔 시간이 짧다. 쌓여있는 데이터도 없다. 그런 상태에서 속전속결로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선택'하고자 하고 나면 나의 마음은 이제 고정이다. 온전히 그 사람만을 향한 황홀한 기대감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연예인을 좋아하는 덕질의 일환이라 볼 수 잇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덕력보다 한없이 섣부른 시간이다. 이런 상태로 상대방을 대하면 상대가 내게 좋다고 말할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게 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행복 회로를 돌리다가 상처 받는 건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헤어 나올 수 있을 정도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며칠 되지도 않아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설레는 감정은 소중하고 좋은 감정들이다. 나이가 찰수록 호기심이 적어지고 기대하는 바가 작아져 그 설레는 감정을 느끼기에 역부족일 때가 많다. 알 것 다 아는 나이에 우리는 쌓인 데이터베이스 위에서 불안으로 무장하고 전전긍긍하는 연애를 하고 있는 내가 싫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생략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알겠다. 다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과는 거리가 머니까, 가급적 연인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을 오래 두고 보자.


언제까지 볼 거냐고 물어본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나랑 동일한지 완벽히 알아차릴 때까지 두고두고 보자. 한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은 무척 재미있고 설렌다. 연인으로서의 상대방을 알아가는 면모도 중요하겠지만, 그전에 인격적으로 사람으로 내게 맞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건, 연인이 기이 전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지, 가치관이 맞는지, 가치관이 맞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맞지 않는다면 내가 감당해낼 수준의 가치관인지, 이것으로 인해 우리의 사랑이 파국을 맞이하지는 않을지 등등 세심하게 보아도 늦지 않다. 그 사이 다른 사람과 연락하고 지낸다면 그는 내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 된다. 그저 그런대로 잘 스쳐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면 상대를 알아가는데 힘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러니 부디, 이번 사랑은 가급적 먼발치에서 그 사람의 옷깃만 바라보며 지켜보자. 무턱대고 옷부터 벗기려들면 지레 겁먹고 도망갈게 뻔하니, 가만히 두고 잠깐 왔다 가면 왔다가는대로 그냥 그렇게 시간에 흐르듯 내놓고 맡겨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구나, 알아가면 좋고, 좀 더 생산적인 이야기들을 해내면 더 좋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 찾아온 소중한 인연들을 알아가는 정도면 충분하다. 이것은 금사빠인 나를 위해 내가 쓴 글이다.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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